자세히보기 2011년 9월 1일

영화리뷰 | 한국전쟁의 중심 ‘애록고지’, 그 곳에서는… 2011년 9월호

영화리뷰

<고지전> 한국전쟁의 중심 ‘애록고지’, 그 곳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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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 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전선야곡>(戰線夜曲, 1951)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노래 신세영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애창되고 있는 노래를 꼽는다면 단연〈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일 것이다. 모두 애절한 노래들이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고지전〉에 흐르는 <전선야곡>에도 전쟁이 주는 애잔함이 배어 있다. 이렇게 한국전쟁은 전쟁 이후에도 우리에게 많은 유산과 상처를 남겼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흘렀다.

6·25의 상처를 리얼리티로 풀어내

주지하다시피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휴전에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역사다. 최근 제작되고 있는  한국전쟁 영화들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 사실과 사실의 중간에 놓여있는 인간의 모습에 주목한다. 영화 <고지전>에서도 남성식 이병(이다윗)이 신고식으로 <전선야곡>을 불러 전쟁 특유의 센티멘탈을 전달하고 있다.

영화 <고지전>은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해 남북 간 전쟁이 치열해 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무대인 동부전선 애록고지는 영문명 〈KOREA〉를 〈AEROK〉으로 뒤집어서 작가가 작명해 낸 지명이다.

실제로는 중부전선의 ‘철의 삼각지대(철원, 김화, 평강)’에 위치한 백마고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곳은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9사단이 이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영화는 스텐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에서처럼 전쟁의 비정한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애틋한 인간사를 담고 있다. 흥행작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은 어느 정도 갖춘 셈이다.

<전선야곡> 노랫말 귓가에 맴돌아

특히, 이 영화는 긴장구조를 국군 내부와 남북 간으로 교차설정해 놓음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했다. 국군 중대장이 아군의 총에 죽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 나온 강은표(신하균) 중위는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으로부터 “네가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고, 알아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묘한 말을 듣는다.

한편, 인민군 장교(류승룡)가 국군포로에게 “너희가 이 전쟁에 지는 이유를 알아?”, “너희는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는 거야.”라고 외친다. 전쟁영화는 자칫 스펙타클에만 의존함으로써 스토리가 단조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고지전〉은 여러 복선을 설정하여 극적 긴장감을 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박상연 작가는 벌써 몇 편의 전쟁영화로 이름을 알린 이 분야의 전문가다. 남북 병사의 우정과 분단의 아픔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소설 <디엠제트(DMZ)>를 쓴 작가가 바로 그다. 두 편 다 남북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황되거나 어느 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분단 구조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배경음악 <전선야곡>은 국군 사기 진작과 민간인의 반공정신 함양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이후 이 노래는 군인이 부르면 군가로, 술집에서 부르면 유행가로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이는 아마도 길고 긴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 새겨진 상처가 전쟁을 끝낸 후에도 아물지 않았다는 반증이리라. 이 노래는 가수 신세영 이후에도 나훈아, 박일남, 조용필 등 유명 가수들이 리메이크 해 인기를 얻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잘 반영한 곡이다.

정전협정 이후 58년이 흘렀다. 영화 <고지전>에 구슬프게 흐르던〈전선야곡〉의 가수 신세영 씨는 2010년 7월 22일 별세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만일 신세영 씨가 영화 <고지전>을 보며 삽입된 자신의 노래를 직접 들었다면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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