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10월 1일 0

PRKOREA 20만 프로젝트 | 국가대표 기록유산 BEST 5! ① 2011년 10월호

PRKOREA 20만 프로젝트 22

국가대표 기록유산 BEST 5! ①

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일본해를 동해로, 다케시마를 독도로 바꾸는 등 왜곡되고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것도 한국인들에게 중요하지만 정작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5천년 한국 역사와 문화유산을 세계인에게 감동적으로 스토리 텔링하는것이 더 중요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세계인들이 한국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가 선조들의 남겨준 위대한 한국의 문화유산과 영웅들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재 세계인이 열광하는 K-pop처럼 세계역사에 감동을 줄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록유산 5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직지’, 세계 정보통신 혁명의 원조

세계인이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고 있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BBC,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타임잡지 등의 세계의 유수 언론들이 지난 1천년 동안 인류를 바꾼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다고 선정한 것이 바로 금속활자 기술이다.

금속활자 기술은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특권 계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일반 대중들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벗어나 정보를 생성하고 퍼뜨려 나가는 주인공으로 나서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서양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여러 가지 역사사건들 즉,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이 일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인들이 제대로 모르는 것이 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제작된 것이 바로 한국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이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가 선정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를 통해 세계인은 인류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인 금속활자 기술을 서양보다 먼저 개발한 나라가 한국임을 알아가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가장 먼저 발명하고 이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보급한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경경기 권학문에는 고려의 동활자와 목활자 인쇄법을 전달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과거 금속활자를 통해 인류를 바꾼 위대한 발명을 한 한국인의 혁명적 생각은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 혁명을 주도해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직지로 시작된 한국의 문화유산이 전 세계 모든 이의 지식대중화 혁명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사관’ 이라 한다. 사관은 항상 임금 곁을 동행하며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사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시대를 담은 책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부터 철종에 이르는 25대 472년, 17만2천여 가지의 국정기록, 인물평,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의 공식 국가기록서이다. 단일 역사서로서는 세계최대 규모이다. 조선의 최고 통치자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정책이 사관의 기록을 통해 역사 앞에서 낱낱이 공개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국왕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한 것은 바로 ‘사관’이다. 따라서 국왕들이 국정을 운영할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사관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해당 임금이 살아 있을 때는 편찬될 수가 없었다. 사관이 국정의 내용이나 인물평, 국정비판 등을 초서로 기록한 것을 사초라 하는데 사초는 은밀히 작성되어 임금이 세상을 떠나야 편찬작업이 완수됐다.

사초는 당대 최고의 국가 기밀로 비록 왕이라 하여도 열람할 수 없도록 하였다. 27명이나 되는 조선왕조의 임금 그 누구도 생존 시 실록을 읽지 못했다. 왕이 자신의 통치 역사를 후대에 기록하고 보전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숭고한 책임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민본정치 구현의 절정 ‘훈민정음’

한글이 없던 시절, 조선시대는 학식이 곧 권력이던 사회였다. 한자로 이루어진 당시의 어려운 문자 체계는 사회적 계급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을 접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뿐만 아니라 한문 독해의 어려움은 백성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한문으로 쓰인 자신의 죄목을 읽을 수조차 없는 백성들이 자신이 짓지도 않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억울하게 고통 받아 죄인이 되는 일이 많았다. 1443년, 28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글자체계 한글의 발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 선례가 없을 만큼 창조적인 발명품이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수많은 문자 중 개발자와 그 개발 의도가 나온 것은 한글이 유일하다.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이 권력의 최정상인 왕의 신분에서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것은 글을 배우지 못해 무지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고, 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있다.

이는 당시 백성들에게 현재의 삶보다 미래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주었다. 백성들이 읽기 쉬운 한글로 농사와 예법에 관한 서적이 백성들에게 널리 배포가 되었고 백성의 눈과 귀가 열리게 되어 농업을 발전시켜 농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한글 소설의 유행으로 상업적인 출판이 성행하게 되어 문화발전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농민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이를 통해 지식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 서양사회의 문화수준을 앞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최고 통치자인 조선의 왕이 백성을 하늘처럼 사랑했던 그 생생한 기록 훈민정음. 이 정신은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이 지구촌의 문명퇴치를 위해 앞장서며 전 세계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기태 / 반크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