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10월 1일 0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 70시간 평원 달려 이르쿠츠크로 2011년 10월호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2

70시간 평원 달려 이르쿠츠크로

7월 마지막 일요일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예상외로 다소 한가로웠다. 그러나 체제전환 이후 도로정비 및 건설사업이 부진한 상태에서 활성화된 건축사업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도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평일이면 시내 전역이 하루 종일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호텔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역까지 도보로 15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일과시간에 승용차로 이동할 경우 약 2배에 해당하는 30분 정도가 소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건설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해 낸 영화배우 출신인 세르게이 다르킨 라리사 연해변강주 주지사 부인이 한 몫하고 있다고 시민들은 전하고 있다.

한 택시 운전사는 물론 그 과정에는 심각한 부패현상이 개입되어 있으며 교통량의 예측이나 대비 없이 건물만 세움으로 인해 교통 혼잡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개하며 주정부와 시정부의 고위관리 모두가 하나의 ‘마피아’ 조직과 같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를 비롯한 유럽 및 러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자본주의의 물결은 러시아의 극동지역의 관문인 이 곳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강렬하게 확산되고 있다. 거리에는 중국인들이 자주 눈에 띄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보따리 무역에 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내 상권 역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내년에 개최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건설 사업에 동원되는 북한 노동자의 수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의 물가는 모스크바보다 더 높았다. 단순비교로 모스크바 시내 거리 자판대인 키오스크에서 30루블(1,200원 정도)에 판매하는 500㎖ 생수 1병 가격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는 40루블(1,600원 정도) 정도였다.

청년들, ‘푸틴 없는 러시아’ 외치며 정권 비판

반나절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본 블라디보스토크는 높은 물가와 증가하는 실업률 등 러시아의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역 인근의 중앙광장에서 히피 행색의 십여 명의 젊은 청년들이 ‘푸틴 없는 러시아’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현 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었으며, 그 주위를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시위 모습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되었다. 정도와 과정의 모순점은 존재하기는 하나 자본주의 체제의 새로운 러시아의 건설은 어느 사이 연착륙의 과정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탑승시각이 도래했다. 어둠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쪽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내를 희뿌옇게 장식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오후 9시경 우리 일행은 2개의 객차에 지정된 각자의 자리에 착석했다. 이번 여정에 동행하는 69명의 일행은 초등학생부터 80대 고령의 노신사에 이르는 연령대와 직장인, 교사, 교수 및 사업가를 포함한 주부 등 직업 또한 매우 다양했다. 이런 다양성이 만 3일에 걸친 기차여행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대시켜 주었다.

러시아 열차는 속도에 따라 급행(스꼬루)과 완행(빠싸쥐르스키)이 있으며, 그 구분은 열차번호로 이루어진다. 급행은 열차번호 1~170번, 완행은 171~400번에 해당된다. 객실은 3가지 형태로 분류되는데 ‘룩스(1등 칸)’는 2인승으로 두 개의 침대가 마주보고 있는 방이고, ‘쿠뻬(2등 칸)’는 4인승으로 2층으로 된 2개의 침대가 마주 놓여 있으며, ‘쁠라즈카르트(3등 칸)’는 한 객차에 칸막이가 없이 침대만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우리 일행이 탑승한 객실은 2등 칸인 ’쿠뻬‘였다. 오후 9시 30분 열차는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향해 서서히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시작된 여행의 시작은 시베리아에 대한 동경을 더욱 증폭시켜 주었다.

열차 속 릴레이 강좌 … 북방대륙 진출 꿈 꿔

시베리아는 지역적 특성과 대자연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러시아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5세기 후반 예르마르크로부터 시작된 시베리아 정복 이후 시베리아는 러시아인의 정신과 자유와 평등의 이상적 갈망이 잠재된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오랜 세월 동안 문명사적 측면에서는 러시아의 침략과 착취 또는 방기의 대상이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런 참담한 역사는 역설적으로 시베리아에게 오히려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자연환경 측면에서 시베리아가 건재한 것은 그 동안 문명의 철저한 외면 덕분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한 여름의 푸른 스텝지대와 간간히 이어지는 물줄기, 하얀 피부를 뽐내며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는 자작나무 군지를 열차는 시원스럽게 내달렸다. 찻잔을 들고 차창에 기대어 열차 안에서 경험하는 지평선은 시베리아 대륙의 광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의 한가로움과 여유는 앞만 보고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오던 그간의 지친 삶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긴 시간의 열차 여행으로 인해 올 수 있는 다소의 따분함은 색다른 계층의 사람들과의 대화와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가 러시아 시베리아와 관련된 주제로 진행한 열차 내 릴레이 강좌로 해소할 수 있었다.

식당칸에서 진행된 강좌는 ‘시베리아의 개황’을 필두로 하여 ‘시베리아, 신들의 고향’, ‘한민족의 혼이 서린 두 개의 바다 – 바이칼과 동해’, ‘여행 시 필요한 필수 러시아어 및 음식문화 소개’, ‘시베리아에는 어떤 민족, 어떤 언어가 있는가?’,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의 잠재력 : 한반도의 잠재적 성장동력 공간’ 그리고 ‘바이칼 호수의 생태와 가치’ 등 총 6회로 구성되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베리아 경관을 배경으로 진행된 강좌로 현실감은 더욱 진해졌으며, 여정에 참여한 일행들에게 시베리아 자연, 자원과 인문·사회과학적인 인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강좌를 담당했던 필자 역시 타 강좌들을 통하여 역사의 사이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북방대륙을 무대로 활약하던 우리들의 선조들, 그리고 현재 기후온난화와 자원 확보, 대륙진출 등의 문제로 다시 한 번 북방대륙의 꿈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 대한 것들이다.

하바로프스크, 벨로고르스크, 치타, 울란우데를 거쳐 열차가 바이칼 호수를 맞이하며 우리 일행의 여행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갔다. 캄캄하고 적막한 광야의 밤, 여명의 물안개, 폐부를 찌를 듯한 푸르름을 과시하던 광활한 초지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 나가는 인간의 의지 등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던 3박4일 간 약 70시간에 해당하는 열차여행은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에서 멈춰 섰다.(계속)

김정훈/ 배재대 한국-시베리아 센터 책임연구원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