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10월 1일

Zoom In | 일본 노다 내각 출범…한·일 갈등 표면화 안 될 수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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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다 내각 출범…한·일 갈등 표면화 안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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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노다 요시히코(왼쪽) 전 재무상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간 나오토(오른쪽)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는 다음날인 8월 30일 일본의 제95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연합뉴스

간 나오토 총리의 사임에 따라 지난 8월 29일 치러진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노다 요시히코 전 재무상이 민주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다음날 중·참 양원에서 노다가 제95대 수상에 선출됨으로써 노다 내각이 출범했다. 2009년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2년 만에 벌써 세 번째 총리다.

노다 총리는 아버지가 육군 자위관 출신인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1994년에 호소카와 전 수상이 이끄는 일본 신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5선 의원이다. 노다 총리는 일본에서 보수적 엘리트의 양성소로 알려진 ‘마쓰시다 정경숙’의 1기 졸업생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신보수우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적극적이다. 미?일동맹을 강조하고, 반중국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영토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주장을 주도해 왔다.

보수우익적 성향의 노다가 신임 총리로 선출되자 한국에서는 향후 한·일관계가 갈등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논평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반응과 달리 일본 국민들이 노다 내각에 거는 기대는 매우 높다.

민주당 대표 경선 전 노다 총리는 재무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명도나 인기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아사히신문>이 간 나오토 총리의 사임 후 차기 총리에 적당한 인물을 물은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불과 4%의 지지를 받았을 정도다.

그러나 총리로 선출되기 전의 지명도나 인기와는 별개로 내각 출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다 내각의 지지율은 60%를 상회하여 일본 국민들이 새 내각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여실히 나타냈다.

노다 총리, 민주당 내 ‘신보수우파’

노다가 민주당 당대표 경선을 통해 자신에 대해 ‘생긴 건 볼품없어도 진흙탕을 누비며 열심히 일하는 미꾸라지’에 비유하면서 노다 내각은 일명 ‘미꾸라지 내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다 총리는 취임 첫날 도쿄 시내의 한 이발소에 들러 1천엔짜리 이발을 함으로써 친서민 이미지를 어필했다.

도쿄의 평균 이발비가 4천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싼 것이다. 일단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총리의 모습에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신임 총리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다.

우선 3·11 동일본대지진 피해의 복구와 부흥은 노다 총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10조엔 규모의 부흥재원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노다 내각은 일단 소비세와 소득세를 한시적으로 인상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음은 원전문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54기 가운데 41기가 가동정지 상태에 있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과 원전 반대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다 총리는 원전의 재가동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기치로 내걸었던 전임 총리와 달리 안전이 전제되는 한 원전을 다시 가동시키겠다는 것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력의 공급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엔고(高)다. 엔고는 일본경제를 압박하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지만 세계경제와 연동되어 있는 문제이고 섣불리 시장에 개입할 수도 없는 만큼 노다 총리는 재무상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엔고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상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당 일치하여 힘을 합쳐도 모자란데 민주당의 내부사정이 녹록치 않다. 사실 대중적 지명도도 낮고 당내 입지도 취약한 노다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내부의 역학구도에 기인한다.

노다는 민주당 대표선거 1차 투표에서 395표 가운데 141표를 얻었다. 오자와·하토야마 그룹이 함께 지원한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에게 41표나 뒤진 2위였다. 그러나 1, 2위가 겨루는 결선투표에선 ‘반오자와’ 진영의 지지를 얻어 결과를 역전시켰다. ‘반오자와’ 연합전선이 그를 총리로 만드는 데 더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이다.

‘반오자와’ 그룹에 의해 총리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현재 민주당의 최대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오자와 그룹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가 노다 신임 총리의 리더십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노다 총리는 당직 인사 및 각료 인선에 오자와의 측근을 기용하는 탕평인사를 했다.

한편 참의원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상황도 노다 총리의 국정운영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자민당 연립정권에서 아베, 후쿠다 두 전임 총리가 연달아 1년 만에 자진사퇴한 데에는 당시 참의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국정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지 못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진·원전·환율 … 눈 앞 과제 산적

이러한 당 안팎의 어려운 상황을 노다 총리가 잔여임기 1년 동안 과연 얼마나 잘 헤쳐 나갈지 높은 기대와 달리 실현여부는 의문이다. 반면 복잡한 국내 사정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외교에 투자하는 시간은 적을 것으로 보여지며, 따라서 한국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은 한·일 간 갈등은 크게 표면화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노다 총리는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전범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야스쿠니 신사에는 참배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편향된 역사인식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와 비판에 대해서는 한국,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와 윈-윈의 관계로 가고 싶다고 발언해 정치가 개인으로서의 인식과 총리로서의 각오는 다르다는 것을 언명했다.

다만 국내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지지율 상승을 위해 내셔널리즘을 활용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은 잠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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