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10월 1일

특집 | 가스관 연결, 한·러-북·러 양해각서 체결로 탄력 생겨 2011년 10월호

<편집자주>

최근 러시아 산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국에 공급하기 위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으면서 동북아 질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스관 연결 사업은 2008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와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인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 간 논의까지 감안하면 20년 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북·러 간에 가스관 연결을 위한 합동실무위원회 설치 양해각서(MOU)가 체결되고 한·러 간에도 관련 로드맵이 합의되었다. 외양으로 보면 1992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사업이 20년 만에 실행단계로 접어드는 듯하다.물론 20년 동안 말만 무성하고 실현되지 못했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모든 문제를 떠나 20년 간 지속된 안보상의 우려들이 지금은 더욱 엄중해져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약 가스관 연결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동북아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소위 G2로 규정되는 중국의 부상이 지역질서 변동을 주도하는 국면에서 러시아의 동북아 영향력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남북관계도 전략적 상호의존 관계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가스관 연결의 파급영향은 남·북·러 3국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 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듯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의 추진경과와 현황, 러시아의 의도,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집 | 남·북·러 가스관 연결? 동북아 질서 바꾼다

가스관 연결, 한·러-북·러 양해각서 체결로 탄력 생겨

SR_201110_13

지난해 6월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경제포럼혁신 전시회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사장(왼쪽부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5일 러시아 가즈프롬(Gazprom) 사장 알렉세이 밀러는 북한 원유공급상 김희영과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합동실무위원회 설치와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다음 날(16일)에는 한국가스공사(KOGAS) 주강수 사장과 함께 러시아산 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한국에 공급하는 가스관 건설을 위한 로드맵에 서명했다.

이로써 그동안 2008년 한·러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한반도 종단 가스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되었다.

한·러 정상, 2008년 가스관 연결 합의

사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해당 3국 모두 윈-윈(win-win)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동지역으로부터 공급받는 천연가스를 다변화하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고, 러시아는 세계 2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인 한국에 러시아 동부 가스 자원을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형태로 장기간 공급함으로써 국가전략의 하나인 시베리아 극동지역에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도 높은 경제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북한도 통관 수수료를 받거나 또는 일부를 러시아산 에너지로 대신 받는 형식을 통해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현상을 부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사업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여 정점으로 치달았던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경제성을 판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민간 연구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다.

때마침 러시아가 천연가스관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통합가스공급망(UGSS)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극동지역 가스관을 연결·통합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만 확인되면 그 실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 수급 구조가 현재의 남북관계 하에서 국가안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이유, 천연가스 가격과 북한 내 가스관 건설비용 분담 및 운영 문제 등 에너지 공급자인 러시아의 우월적 협상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의 소극적인 반응 때문에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다만, 이 사업의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데는 한국과 러시아 전문가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정부차원에서 빠르게 논의된 것은 지난 2008년 9월 모스크바 한·러 정상회담에서부터이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사업을 민간 형태의 논의에서 현실적인 양국 협력사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합의하였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2015년 이후 30년 동안 연간 약 10bcm(750만t)의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한국으로 공급된다.

그러나 이 사업은, 잘 알려진 대로 금강산관광객 피격,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폭 등 남북관계 악화와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그동안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사업이 좌초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09년에 가즈프롬과 한국가스공사가 공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고, 2010년에 사업의 안전보장을 위한 관련국 간 협정과 가격협상, 그리고 천연가스 도입계약이 체결되어 올해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합작법인이 설립되어야 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2014년까지 북한 영토 내 가스관 설계와 시공 등 모든 공정이 완료되어 2015년에 시운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천연가스가 공급되어야 했다.

당초 2015년부터 연간 750만t 공급 추진

최근 러시아는 매우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재추진해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정부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논의하면서 사업 추진을 북한 당국 차원에서 적극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러시아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러시아가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이유는 우선 국제경제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제1의 천연가스 자원을 보유한 러시아가 2008년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세계 가스 소비 또한 위축되자 보다 안정적인 신규 가스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둘째, 한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은 결국 러시아 국가전략에 담고 있는 극동 지역의 자립도 높은 경제지대 형성과 경제활동의 역동성 제고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즉 한국으로의 가스 판매를 매개로 자국 내 유관 산업으로 경제 시너지 효과를 확대하는 한편, 동북아 경제권, 더 나아가 아·태 경제권에 자연스럽게 편입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저런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했던 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셋째, 러시아는 이미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통합가스공급망을 건설 중에 있으며, 그 계획의 연장선에서 현재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 즉, 이 파이프라인이 완성되면 사할린 가스를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노선(극동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반도, 특히 남한으로 송출할 수 있는데,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에 약 740km에 달하는 가스관을 건설할 수 있다면 LNG 기준 세계 2위의 수입국인 한국 시장에 극동 시베리아 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2008년 한·러 정상이 합의된 한반도 종단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PNG) 사업은 실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그러나 북한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며, 이후 천연가스 가격과 가스관 운영, 그리고 노선 확정, 위기발생 시 대체 방안 등의 논의와 합의가 남·북·러 당국 간에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의 정책결정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러시아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선 구축하고 더 나아가서는 남북관계 또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