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11월 1일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 ‘시베리아 진주’ 바이칼, 한민족 발원지 2011년 11월호

시베리아 대장정, 동해에서 바이칼까지 마지막회

‘시베리아 진주’ 바이칼, 한민족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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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 중앙도서관 컨퍼런스 홀에서 진행된 ‘분단을 넘어 시베리아로’라는 주제의 이르쿠츠크 남북러 협력 포럼(위), 참가자들이 부랴티야 전통공연을 참관하고 있다.(아래)

시베리아 평원을 거침없이 달려온 열차는 8월 3일 오후 자신의 품안에 품고 있던 우리 일행을 동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이르쿠츠크 역에 내어 주었다. 역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어 잠시 동안 우리가 시베리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망각할 정도였다.

이르쿠츠크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다. 원래 이곳에는 ‘부랴트’라는 동양계 소수민족이 살았는데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정책에 의해 1561년부터 이곳에 러시아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1652년 앙가라 강의 지류인 이르쿠트 강이 흘러드는 지역에 위치한 드야치이 섬에 러시아 원정대는 겨울 캠프를 설치했다.

1661년에 드야치이 섬에 만들어진 이 캠프를 앙가라 강변으로 옮겼으며 이 요새를 이르쿠츠크라 불렀다. 이 요새는 10년 동안 유지되다가 1671년 당시의 건축양식에 따라 4개의 망루를 토대로 하여 건설되었다. 이후 도시는 동시베리아의 군사와 무역중심지로 발전했다. 급속한 성장과 함께 이르쿠츠크는 동시베리아에서 중앙 러시아로 이어지는 무역 교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시베리아 대부분의 도시들은 자원개발 및 산업개발, 군사적 목적으로 한 공산주의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건설되어 도시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삭막한 편이다. 그러나 이르쿠츠크 시는 유럽풍의 아름다운 전원도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1812년 러·프 전쟁에 참전해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하여 프랑스까지 진격한 러시아 젊은 장교들 중 제정 러시아 황실의 부패와 농노봉건제에 대항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일부가 이르쿠츠크로 유형을 왔다.

이들 젊은 장교들의 부인 중 일부는 영하 30~40도에 달하는 살인적 추위를 극복하고 혁명가 아내의 길을 따랐다. 결국 이들이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 귀족문화를 꽃 피우고 유럽수준의 문화를 소개하게 된다.

유형온 러시아 장교들, 귀족문화 꽃피워

이들 덕분에 아직까지 도시 내에는 당시에 지어진 유럽식 극장, 오페라 공연장, 교회 등과 같은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이르쿠츠크의 역사와 유물은 20세기 들어서도 큰 변화 없이 잘 보존되어 왔다. 러시아 혁명의 격동과 그에 따른 정치와 행정제도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르쿠츠크 시는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에도 도시는 시베리아의 교육, 문화, 과학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년 전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이 혁명의 꿈을 키워 가던 곳, ‘시베리아의 진주’, ‘성스러운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지구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이 있는 바로 이곳에 지금 우리는 다른 꿈을 꾸며 서 있다.

시내에서 약 30km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욜로치카’라는 청소년 휴양소에서 이르쿠츠크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이튿날 일정은 한때는 이르쿠츠크 주지사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 중앙도서관 컨퍼런스 홀에서 ‘분단을 넘어 시베리아로’라는 주제의 이르쿠츠크 남·북·러 협력 포럼으로 시작되었다.

남북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북방경제권의 형성,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남북협력과 동북아 다자간 협력관계의 구축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통한 대북정책 전환의 바탕 마련 등을 목적으로 한 포럼은 세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발표 및 토론의 주제는 북·중·러의 이해가 교차하는 두만강 지역의 다자간 협력모델,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두만강 지역협력, 중국 동북 3성의 개발전략과 나진 선봉지역, 시베리아 자원개발을 둘러싼 중·일의 각축과 남·북·러 협력, 시베리아 자원개발의 빛과 그림자, 남북협력의 동해 축과 나진 선봉지역과의 협력 모색으로 한반도의 긍정적인 미래를 위한 시베리아 공간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됐다.

알혼섬, 징기스칸 무덤 전설 간직

이르쿠츠크에서의 3일째 일정은 필자가 이번 여정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과 더불어 가장 기대했던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 탐방이었다. 약 5시간 걸친 여행은 우리에게 스텝지대와 지평선의 참된 의미를 확인시켜 주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이 저 멀리 달려 나가 하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바이칼은 그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발원지로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우리 전통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샤머니즘의 성소가 바이칼호 알혼섬에 있기 때문이다.

약 20여 분 간 소요되는 바지선 탑승을 통해 바로 알혼섬에 도착하여, 칭기스칸 무덤의 전설을 담고 있는 부르한 바위로 향했다. 아시아 10대 관광지 중 하나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영력이 강하다는 바위 주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분주했다.

현지의 부랴티야 전통가옥에 노정을 풀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통음식 체험을 위해 두 마리의 양이 희생되었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 홀로 다시 부르한 바위를 찾았다. 바이칼 호수 동편 수면이 불거지면서 맞이한 부르한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주변에서 촛불을 켜고 명상을 하고 있는 수행자들 때문인지 신비감과 성스러움 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시베리아의 성스러운 바다, 바이칼에 대한 깊은 명상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칼에서 우리 존재의 시원을 탐구함은 북방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새롭게 해 줄 것이다.

바이칼과 알혼섬을 뒤로 하며 왔던 길을 돌아 와, 늦은 밤 이르쿠츠크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피곤함에 눈을 감으며 이번 여정을 돌아보았다. ‘동해에서 바이칼까지’라는 구호로 연해변강주와 시베리아 동쪽을 가로질러 바이칼에서 마감한 여정은 우리 조상들이 거쳐 왔던 길을 회고하고 우리의 대륙진출의 꿈을 키워나가야 될 준비 작업은 아니었을까?

김정훈 / 배재대 한국 시베리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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