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수령님, 장군님 살려주세요!…굶주림의 호접몽(胡蝶夢) 2011년 12월호
영화리뷰
<겨울나비> 수령님, 장군님 살려주세요!…굶주림의 호접몽(胡蝶夢)
지난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사상초유의 식량난을 겪으며 대규모의 아사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여러 보도를 통해 들어온 소식은 북한체제 붕괴를 점칠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배급제 등 사회시스템이 무너지고 대다수의 북한주민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생존의 장으로 내몰렸다.
비극의 땅 황해도, 북한 최고의 곡창지대인 이곳도 식량난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정도가 타 지역보다 심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국을 통해 유입되는 물품을 기반으로 한 상거래가 비교적 저조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농지는 기관과 군부대에서 직영하다시피 했기때문에 농장원이 아니고서는 수확의 혜택을 보는 일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바로 지금,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화
그 비극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름에서부터 스산함이 풍기는 〈겨울나비〉다. 봄을 연상시키는 나비를 겨울과 매치시킴으로써 비극적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비의 죽음이 바로 떠오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기분 나쁘게’ 비극적이다. 마치 스티로폼으로 유리를 문지를 때 나는 소리처럼 몸서리치게 한다.
이 영화는 우리 정서의 내면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모자(母子)’관계의 친밀성에 균열을 냄으로써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는 하지만 영화 속 비극에 대한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주인공인 진호와 병든 엄마의 관계는 ‘그 사건’ 이전에는 가난함마저 애틋하게 느껴져서 영화제목을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 불러도 될 만큼 따스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모자(母子)〉였다. 김규민 감독이 영화 제목을 <겨울나비>로 수정한 이유를 들어보면 필자의 설명이 궁색해진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탓이다. 김 감독은 꽃을 찾는 나비가 춥고 먹을 것 없는 겨울을 나는 것을 상상하며 제목을 수정했다고 말한다.
영화 속 북한 모습은 매우 리얼하게 그려졌다. 나무를 하기 위해 줄지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그들의 노력을 착취하는 군인들, 허름한 마을 장마당, 퉁명한 보안서의 보안원 등. 영화 속 배우들이 황해도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고 서울 말씨를 쓰도록 했던 점만 제외한다면 담담하게 북한의 회색빛 소도시 모습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겨울나비〉의 김규민 감독은 황해도 출신이다. 그리고 당시 ‘그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에서 아사(餓死)의 일상을 경험했다.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는 아사의 경험 중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소재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가 실화이기때문에 비극적 결론에 대해 더 부정하고 싶어진다. 인간 존재에 대한 유사 부정의 절망감이랄까?
영화를 보며 하나 아쉬운 점은 김규민 감독이 북한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점과 고난의 행군시기에 일반 인민들이 겪었던 고통의 단면을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평면적으로 흘렀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과잉되었지만 영화적 맛은 지나치게 절제됐다. 북한연구자의 입장에서 북한 소도시의 보편적 모습이 보다 다양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엄마 역의 박소연은 실제 기근에 시달린 사람인양 퀭한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 제작과정에서도 배역에 걸맞은 심신상태를 만들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난의 행군’을 한 후 촬영에 임했다는 전언이다. 김 감독도 그동안 <국경의 남쪽>, <타짜>, <크로싱>, <포화속으로> 등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김 감독의 삶이 북한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하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으리라.
북한체제 허구성과 아이러니 직접 표현
김 감독은 <겨울나비>에서 주인공 진호의 엄마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밑에서 “수령님, 장군님 진호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필자도 이 장면에서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세계 10대 종교 중 하나라는 주체사상의 현실과 아들이 해오는 땔감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사는 애절한 모정이 두 수령 앞에 무릎을 꿇고 삶을 애원하는 모습… 그리고 정신착란 상황에서의 비극.
<겨울나비>는 충격적 소재의 채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제작기법도 눈에 띈다. 김 감독은 어린아이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꿈과 현실이라는 이원성을 백색 배경의 의식세계로 표현했다. 영화 <매트릭스>와 <인셉션>에서 선보였던 현실과 허구의 이원세계, 혹은 이데아의 세계를 패러디한 듯하다. <매트릭스>와 <인셉션>의 감독이 장자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니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소재로 사용되었고 공교롭게도 김 감독도 ‘나비’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비극적 결말로 진호는 죽었지만 진호의 소박한 꿈은 스크린을 통해 계속 진행된다. 닭을 요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진다. 회색빛 단칸방속의 진호가 꿈꾼 그것은 진호의 꿈도 엄마의 꿈도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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