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문창범, 홍대선 2015년 12월호
이달의 인물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교통총장 문창범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러시아 지역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인 문창범(文昌範, 1870~‘1938’) 선생을 2015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하여 재력가로 자수성가한 인물로 연해주 지역 교육 및 언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권업회가 조직되자 우수리스크지회 대표로 활약하였으며, 당시 해외 독립운동을 이끌던 독립운동가 39인과 함께 만주 길림에서 배포된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로 알려진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7년 전로한족회중앙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러시아 지역 귀화인과 비귀화인 등 한인사회 결집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기관지인 한국어 신문 <청구신보>를 간행하였다.
1919년 1월 선생은 러시아 니코리스크에서 한족회대회를 개최하고 한인 2백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워 시내를 행진하였으나 주둔 일본군에 의해 해산 당하였다. 1919년 2월 니코리스크에서 러시아, 간도 및 국내 대표들이 참석한 전로국내조선인회의를 개최하여 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확대개편한 대한국민의회를 창설하였다. 선생은 임시정부의 성격을 띤 최초의 조직인 대한국민의회 의장에 취임하였다.
1919년 3월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2만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신한촌 시내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선생은 통합 임시정부 구성에 참여해 대한국민의회를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토록 하였으며 국내외 교통·통신의 연결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교통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 선생의 순국과 관련하여 상해에서 순국했다는 설과 1938년 러시아에서 옥사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정부는 1990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연해주에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문창범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활약상을 조명하기 위해 오는 12월 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며 12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기획전시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스스로 표적이 되어 피난민 지킨 홍대선 하사
국가보훈처는 홍대선 해군 하사를 1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2년 1월 4일 LST-801(천안)함 VP(단정)정장으로 서해경비작전에 참가 중이던 홍대선 삼등병조에게 순위도의 피난민 840명을 안전하게 구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옹진반도는 북한의 수중에 있어 바로 앞 순위도에 접근하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홍대선 삼등병조 등 대원들은 VP정을 타고 격랑과 싸우며 피난민 이송에 최선을 다했다. 도중에 북한군이 전마선으로 상륙을 기도하며 기관총과 박격포를 앞세운 무차별 공격을 가해오자 홍대선 삼등병조는 적을 유인해 돌진, 북한군 전마선 3척을 격파했다. 이어 자신의 단정도 파손되어 더 이상의 항진이 불가능해지자 해안에 상륙해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며 적에게 기관단총을 연사했다. 스스로 표적이 되어 적의 사격을 유인함으로써 피난민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그는 교전 중 흉부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전사하였다.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려 해군은 2012년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을 홍대선함이라고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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