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중국-대만’에서 실용을 배우자! 2015년 12월호
시론
‘중국-대만’에서 실용을 배우자!
지난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분단 66년 만에 양안(兩岸) 정상 간의 회담이 열렸다. 양안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들이 만난 것은 매우 획기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대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독립지향적인 민진당 후보가 판세를 리드하고 있고, 중국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민감한 시기다. 혹시 이번 회담이 대만 정부를 인정하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 속에서도 중국은 대만에게 양안 평화의 유지를 위해 독립 지향적 대만 정부는 결코 중국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남중국해 도서 반환 문서를 갖고 있는 대만과의 공조가 필요했다. 대만 국민당 정부는 수세에 몰려있는 선거 판세를 만회하고 중국은 파트너로 국민당을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양안은 회담 장소를 제3국에서, 상대방에 대한 호칭도 ‘시엔셩(先生, Mr.)’으로 하는 매우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이 회담을 성사시켰다.
최초 양안 정상회담, 내막은?
그러나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한 ‘92컨센서스’에 대해서도 구조적인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은 양안 문제가 동서독 문제나 남북한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국제법상 주체가 중화인민공화국에 있고 통일도 중국을 주체로 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주창한다. 대만은 초기에는 하나의 중국이 중화민국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해 왔고 마잉주 정권이 말하는 중국 역시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이다. ‘92컨센서스’ 합의 이후 국민당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에는 ‘미래에 다가올 중국(未來中國)’이,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정권 시기에는 양안이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라는 주장을 했다. 만일 내년 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승리하게 되면 하나의 중국 원칙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부정될 수밖에 없다. 대만 내부에서는 1월 대선을 2개월 앞두고 이런 합의를 한 것은 ‘대만을 팔아넘기는’ 반민족적 행위라는 극단적 질책과 함께 중국의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사실 양안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중국은 여전히 대만을 흡수해 민족통일을 달성하려고 하며 대만의 독립시도에 대해서는 비평화적 수단(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반(反)국가분열법」을 제정해 중국을 벗어나려는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당 정부는 안정적인 양안관계를 유지해야만 경제발전이 가능하며 국제사회에서도 외교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대만 민중을 설득하고 있다. 민진당은 양안이 확고한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 하에 하나의 중국을 전제하지 않는 ‘독립적 현상유지’ 정책을 펴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한 미국은 대만을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중간 지대로 운용하고자 한다. 대만 유사 시 대만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른바 「대만관계법」을 제정하면서까지 대(對)중국 견제를 신경 쓰고 있으며 현 단계에서는 양안의 현상유지를 최적의 정책으로 상정하고 있다. 민진당 대선 후보인 차이잉원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자신이 집권하더라도 현상유지를 깨는 갑작스런 양안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임을 역설했고 미국의 긍정적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을 비난하면서도 지난 30년에 가까운 양안교류의 역사와 경험을 존중할 것이라며 자신이 매우 이성적인 양안관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엄격히 말해 양안관계와 남북관계는 서로 분단의 현실을 공유하고 있지만 국력이나 체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수평적 비교가 불가능하다. 특히 양안의 경우 국력의 차이가 현저하고 대만의 왜소성 심화와 자신감 결여로 체제경쟁 또는 국력경쟁 등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상호반목과 경쟁을 통한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자는 양측 정부의 실용적 인식 전환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와 달리 양안은 실용적 차원에서 민간교류가 물꼬를 트고 반관반민 형태의 실질적 정부 간 교류 단계를 거쳤다. 갖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2010년 양안 간 FTA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후 23개의 경제 관련 협정을 맺었다. 이미 800만명이 상호 방문을 하고 있으며 상호 학력인정, 결혼 등 전반적 분야에서 다양한 교류가 깊이 이뤄지고 있다.
남북 대화도 1972년 평양에서 제1차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무수한 정부 간의 합의가 이어졌다. 1986년 교류를 시작한 양안과 비교해 그 역사는 더 길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물론 양안도 내전을 거쳤지만 항일전쟁을 같이한 역사적 전통을 기반으로 극단적 대결은 피해 왔다. 매우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중국식 접근 방법을 통해 축적된 교류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통일 당위성 강조보다는 통일 로드맵이 더욱 긴요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만이 우려하는 것처럼 흡수통일이다.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최근 ‘통일’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나친 경제적 종속이 정치적 공간도 제약하고 결국 중국에 흡수될 것이라는 일부 대만 내부의 반대와 우려를 불식하고 무력충돌 없이 상호발전을 꾀하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대만과 달리 매우 호전적이며 정권유지에 급급해 경색국면의 돌파가 쉽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강조보다는 통일과정에 대한 로드맵이다. 상호의존의 심화를 통한 평화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모호하기는 하지만 양안의 ‘하나의 중국’ 같은 남북의 상징적 공감대를 설정해 교류의 기본틀로 삼는 과정도 참고할 만하다. 연락사무소 같은 상설 대화기구 설치를 계속 타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다 실용적인 남북한 관계로 거듭나길 바란다.
강준영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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