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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 155마일 휴전선 따라 | 평화의 종이 울리는 물의 고장 ‘화천’ 2011년 7월호

현장탐방 … 155마일 휴전선 따라 5

평화의 종이 울리는 물의 고장 ‘화천’

북한강 줄기의 우리나라 최상류, 더 이상 갈 수 없는 DMZ가 가로 막는 이 지역 평화의 댐 하류에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이 위치해 있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은 일류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각국 주요 인사들의 평화 메시지를 비롯해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보내온 각국의 종들로 조성되어 있다.

이 중 평화의 종은 에티오피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세계 분쟁 현장에서 보내온 탄피, 포탄 등을 이용해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무게 37.5t, 지름 3m, 높이 5m이다. 전통 무게 단위로 치면 1만관이지만, 실제로는 9,999관이다. 나머지 1관은 종 윗부분에 달린 비둘기 날개인데 통일 후에 붙이려고 다로 분리해 전시하고 있다.

세계 평화염원 담은 평화의 종

또한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목종 ‘염원의 종’, 상상적 공간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의 종(상징의 종)’, ‘세계 평화 및 남북 평화 기원의 종’ 등 다양한 전시물이 있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 인문들의 ‘악수하는 손’ 조각품도 볼 수 있다.

다음 소개할 곳은 화천댐이다. 1944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댐으로 수로식 수력발전소로 사용하고 있다. 파로호는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당시 화천댐은 남한 전력의 주요 공급원이었기에 이를 차단할 목적으로 중공군의 몰려들었다. 그 때 육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해 수만 명이 이 호수에 수장되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치하하는 뜻으로 파로호(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 명명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원래 이름은 대붕호였다. 담수량이 무려 10억1,800만t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파로호는 해산, 월명봉 등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다.

또한 화천군 간동면 구산리 산 215번지에는 파로호 전투에 대해 소상히 기록한 파로호안보전시관이 있어 한국전쟁 당시 화천댐을 사수한 육군 6사단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 주변에는 무명학도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자유수호탑과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태두인 월하 리태극 선생의 시조비도 있다.

평화의 댐 상류 습지는 생태계 보고

파로호를 거슬러 올라 가파른 산굽이를 돌아 해산터널을 지나면 높이 125m의 거대한 평화의 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경치가 더할 나위 없이 수려한 댐 안에는 물이 거의 없다. 북한강 상류에 쌓은 북한 금강산댐(임남댐)의 둑이 터지면 쏟아지는 물을 막기 위해 방어용으로 지은 대응댐이기 때문이다. 1986년 국민의 성금을 모아 착공할 당시에는 80m였으나, 금강산댐보다 45m 더 높은 125m에 저수용량도 0.1억t 큰 26.3억t으로 완공했다.

북한의 수공을 막기 위한 평화의 댐은 물의 고장 화천을 대표하는 안보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평화의 댐 상류에 자연스럽게 습지가 만들어져 생태계의 보고로 거듭나고 있다. 청정 습지인 이곳에는 수달, 삵, 담비 등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데, 지난 2006년에는 길 잃은 어린 수달을 보호하다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평화의 댐 북쪽의 안동철교 아래서 방사하기도 했다.

국민가곡 ‘비목’의 숨은 이야기

비목(碑木)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가곡 ‘비목’은 1960년대 육군 소위 한명희가 시를 짓고 고(故) 장일남이 곡을 붙여 탄생한 노래다. 1964년 중동부 전선의 백암산 DMZ에 배속된 육군 소위 한명희는 잡초 우거진 DMZ를 순찰하던 중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이끼가 낀 채 허물어져 있는 돌무덤을 발견하게 된다. 무명용사의 것인 듯 한 돌무덤 위에는 나무 기둥으로 만든 묘비가 썩은 채 꽂혀 있고, 그 옆에는 낡고 빛바랜 철모가 뒹굴고 있었다. 산 목련이 마치 조화처럼 피어 있는 그곳에서 한명희는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4년 뒤 한명희는 화천의 비목과 젊은 무명용사의 안타까움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이 시를 지었다.

아픈 전쟁의 기억을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가사에 단조에서 나오는 고독함과 우수에 찬 선율이 돋보이는 이 곡은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국민가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노래의 실제 배경지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DMZ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화천군에서는 백암산과 가장 가까운 평화의 댐 주변에 비목공원을 조성하고 해마다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를 비목문화제를 열고 있다.

박윤식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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