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으로 달려오는 러시아 | 러시아, 신동방정책 추진 이유는? 2015년 2월호
극동으로 달려오는 러시아 2
러시아, 신동방정책 추진 이유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푸틴 3기를 시작한 2012년 5월 ‘러시아 대외정책 실현을 위한 방안’ 문서를 발표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문서는 러시아가 외교 전략의 중심을 유럽으로부터 CIS(1991년까지 소련의 일원이던 독립국가) 국가와 동북아, 더 넓게는 아태 지역으로 사실상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이러한 발표가 이전에도 있었던 수사학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일부 제기되었으나 극동개발부 신설, 대규모 극동개발 프로젝트의 가동, 정치·안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중·러관계의 강화, 북·러관계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나진~하산 철도 연결), 몽골 및 CIS 국가와의 유기적 경제협력 모색 및 외교 관계 확대 등 이후 전개된 러시아의 중요 정책들에서 이전과는 다른 구체적 협력 징후들이 발견되었다. 푸틴의 신동방정책이 문서가 아닌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2000년대 고유가 기조로 자본 축적에 성공한 러시아가 이후 백년지계 구축을 동북아를 포함한 아태 국가들과의 다양한 협력에서 찾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동북아 및 아태 국가와 경제 분야에서 견고한 협력을 유도하고 정치·안보적 협력까지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러시아 극동 지역에 확보하고 정치·안보적 위상 또한 높이는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다.
극동 아시아에서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 시도
그러나 러시아의 이러한 전략적 선택이 유럽과의 관계 청산 또는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럽과의 관계는 현상유지 플러스 알파(Status Quo + α)의 관리 측면에서 접근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원했으나 최근 국제 정치·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동아시아 지역에 보다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동방정책의 기본 구상이다.
그렇다면 왜 푸틴 대통령은 신동방정책을 2012년 취임하자마자 천명하였으며, 그 정치·안보적 배경은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럽주의 국가발전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러시아가 추구해 온 유럽(특히 서유럽)과의 기본적인 관계 설정은 평등주의에 입각한 상호이해 증진,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협력, 러시아 정치·안보적 이해의 명확한 경계 등 3개의 기본 방향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세 가지 중 어떠한 것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이 탈냉전 이후 유럽 질서 재편 과정에 러시아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 정치·안보적 의견 차이에 경제적 지원 축소 또는 제재 등의 수단을 사용하는 등 러시아에 정치·안보적 양보를 강요하는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주의 발전 전략보다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가 발전전략을 모색하는 신동방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둘째,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2011년 이후 소위 아시아로의 복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재균형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시아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의 정치·안보적 측면에서 위협 요인이 되었다. 비록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아시아 강조 발언은 러시아보다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유럽의 나토 동방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배제하거나, 또는 러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MD와 같은 새로운 안보 체제를 구축한다면, 이는 분명 러시아의 안보적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미국의 일련의 아시아 중시 움직임이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셋째, 중국과의 협력이 실보다는 득이 크다는 점이다. 국제 정치·외교 및 안보 부문에서 중국의 가파른 역량 강화는 러시아 입장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미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는 중국과 정치·외교 및 안보 차원의 협력이 가능하지만,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패권국가가 아시아에 고착될 때 러시아의 역내 국제 정치·안보적 활동 범위는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즉, 러시아가 현재의 시점에서 협력과 제약을 적절히 활용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대척점을 이루는 것보다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유용하며, 향후 러시아의 아시아 전략을 수월하게 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서방관계 경색 … 신동방정책 가속
최근 1~2년 사이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이 강도 높은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고, 이러한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가 신동방정책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는 2000년 사회적 안정화 단계로 들어선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주변국가와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동북아 국가들과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과는 영토문제로 소원하여 정치적인 협력이 다소 미흡하지만, 중국 및 북한과는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중국과는 정치, 군사 부문의 협력을 확대하고 에너지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는 나진~하산 철도 연결을 계기로 양측 모두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에 따르면, 오는 5월에 있을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성사 여부를 떠나 북한 내부에서 러시아의 초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러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러시아와의 정치·외교적 관계 강화는 필요조건이며,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그러한 관계 강화를 위한 호조건이다. 즉,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을 우리의 통일 정책과 연계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이며 매우 지혜로운 행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용권 / 한림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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