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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스코필드, 오금손 2016년 3월호

이달의 인물

스코필드 박사, 3·1운동과 일제 만행 전 세계 알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1운동의 산증인인 F. W. 스코필드 박사를 2016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는 영국 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에서 강의하던 중 1916년

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기록으로 남기며, 일제의 비인도적 한국인 탄압에 맞서 싸웠다. 특히, 일제가 자행한 화성 제암리교회 학살 방화 현장과 수촌리를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스코필드는 같은 해 5월 직접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당시 수감되었던 유관순 등을 면회한 후 총독부 고위 당국자에게 고문과 비인도적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각국 언론에 동정과 지지를 호소하였다.

스코필드는 8월 일본으로 건너가 극동의 선교사 8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하라 수상을 면담하여 일제의 근본적인 동화정책과 민족 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에 대한 강압과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후 일제의 감시는 물론 살해 위협까지 받다가 1920년 4월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불완전한 개혁을 비판하였다.

1958년 8월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스코필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1968년 정부는 캐나다인으로 우리 겨레의 자주 독립을 위하여 생애를 바친 스코필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공적으로 소위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며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를 이은 나라사랑, 오금손 대위

오금손 대위는 1930년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북경에서 출생하였다. 채 돌이 되기도 전에 부모를 잃은 소녀 오금손은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항일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 해방 이후 조국에서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오금손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조국을 지키고자 자진 입대하게 된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업무에 임하면서도 오금손은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에 당당히 맞서 이를 물리침으로써 2계급을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된다. 이는 광복군 시절 사격과 전투훈련을 철저하게 받은 결과라고 본인은 회고하였다.

아군의 북진 시기에도 늘 전장을 지키며 어려운 역할까지도 묵묵히 감당해냈던 그녀는 금화와 철원 중간지점에 있는 K고지 전투 중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된다. 끊임없는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던 그녀는 적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 탈출을 감행하여 부대에 복귀,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였다. 탈출 중 입은 부상의 재발로 군을 떠나게 된 이후, 향년 74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오금손은 아버지 오수암 선생에 이어 늘 조국만을 생각하며 일생을 나라에 바친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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