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3월 1일 1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처음으로 날아 오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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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0

처음으로 날아 오르던 날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본 것은 태국 방콕공항에서였다. 압록강을 건너며 시작된 남한행의 마지막 고비였다. 경계심 어린 낯빛으로 방콕공항에 들어섰을 때 불야성을 이룬 공항의 야경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게이트가 뭔지 탑승구가 뭔지도 몰랐고 무작정 안내자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따라가다 보니 비행기 안이었다. 내가 보아온 것은 비행기 출입문에 부착된 탑승 계단으로 여객이 오르내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땅을 밟지 않고 바로 공항청사와 연결된 터널처럼 생긴 탑승구로 비행기에 오르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나긴 탈북여정의 마지막 정말 비행기를 탔구나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볼을 꼬집어 봤다. 분명 생시고 좌석에 앉은 상태였다. 그제야 영화에서나 봤던 비행기 내부 모습이 서서히 구별되어 보였다. 둥그스름한 벽과 천정, 타원형의 창문, 서로 다른 인종의 승객들. ‘내가 정말 비행기를 타긴 탔구나.’ 이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면 목숨 걸고 선택한 간고했던 여정이 끝나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창밖을 내다봤다. 불빛이 점멸하는 비행기들이 여기저기 많은 것이 놀라웠다. 북한에선 그렇게 많은 비행기가 공항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 크기도 엄청나게 커보였다. 문득 이렇게 큰 물체가 어떻게 공중에 뜰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른 떠오르진 않고 자동차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한참을 달리기만 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륙할 위치에 진입하느라 이동하는 것을 모르고 혹시 떠오르지 못해 낑낑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글쎄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큰놈이 뜬다는 게 말이 돼?’ 나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동음이 요란해지고 기체가 부르르 떨더니 가볍게 떠올랐다. 눈 아래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안겨왔다.

또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여승무원들의 아름다운 자태, 예쁜 말씨, 친절한 서비스였다. 너무 낯설고 어색하고 송구스러워 내편에서 더 머리를 조아렸다. 기내식을 제공할 땐 돈을 내는 줄 알고 안 받으려다 그냥 먹는 거라고 해서야 먹었다. 내가 이렇게 ‘중앙당 간부동지’처럼 대접받다니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항공 서비스지만 그때는 엄청난 특권처럼 여겨지며 ‘이제야 진정 사람다운 삶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되어 얼마나 행복에 겨웠는지 모른다.

인천공항에는 새벽에 내렸다. 온통 유리로 된 것 같은 공항청사 모습이 인상적이고 방콕공항보다 시원하고 정갈해 보였다. 하지만 세계 1위의 공항이 인천공항인 줄은 알 수 없었다. 훗날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에 가서야 그것이 실감났다. 한국보다 선진국인 일본의 나리타공항, 하네다공항도 인천공항에 비하면 낙후했다. 중국, 러시아, 유럽,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나라에도 가봤지만 인천공항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남한에 와서 비행기를 꽤 많이 타본 셈이다. 제주도도 가고 외국도 가고, 이제는 항공 여행이 전혀 신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만큼 북한에서의 생활과 비교할 수 없게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나의 생에 정말 기적이다. 아마 북한에 그냥 살았더라면 비행기는 고사하고 육로를 통한 해외여행 한번 못해보고 생을 마쳤을 것이다.

북한에 살았더라면 평생 한 번이나 타봤을까

북한 인구의 0.1%쯤이나 비행기를 타볼까. 글쎄 최근엔 국내선을 운영한다는 소식도 있어 장사로 돈을 모은 부자들이 이용하면 탑승률이 조금 증가할지 모르나 유엔제재 때문에 항공유를 감당할지 의문이다. 북한에서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고위급 간부, 외교부문 종사자, 해외파견 근로자, 체육인, 연예인, 유학생 등일 것이다. 그것도 몇몇 특정한 인원들에 한해서다. 해외파견 근로자도 중국, 러시아 근무가 대부분이고 철도를 이용한다. 연예인, 체육인은 국제경기나 해외공연이 있어야 갈 수 있는데 그런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해외 유학도 당국이 선발해 보내므로 극히 적고 그나마 중국과 러시아에는 대개 기차로 가므로 비행기를 타는 유학생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비행기 이착륙 모습이나 공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근처에도 못가본 채 생을 마치는 사람도 많다. 비행기를 봤다고 해도 하늘에 떠 있는 ‘쌍발기’(구소련제), 헬기, 전투기 등이 대부분이다. 공항이 없는 지역은 여객기를 직접 보기 어렵다. 공항은 평양과 각 도에 한 개씩 있다. 최근 평양 순안국제공항과 원산갈마공항이 새롭게 단장했지만 폐쇄적인 체제가 지속되는 한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여객도 별로 없는 공항 건설에 재원을 탕진해 겉모습이나 과시한다고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북한에 당장 필요한 것은 의식주 해결, 핵 포기, 개혁·개방이다. 비행기나 공항은 그 다음 문제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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