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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을 추모하며 | 소석 이철승, 대한민국 역사 속에 잠들다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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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을 추모하며

소석 이철승, 대한민국 역사 속에 잠들다

TR_201604_58소석(素石) 이철승 서울평화상재단 이사장이 지난 2월 27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 정통보수의 원로인사인 그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 해왔다.

1922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전주부에서 자란 이철승 이사장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재학 중 해방을 맞았다. 그해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가 정해지자, 전국학생총연맹 대표의장으로서 ‘반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전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4·5·8·9·10·12대 국회의원(7선)을 지냈다.

특히 1970년에는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경쟁하기도 했다. 이후 국회 부의장을 거쳐 1976년에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다.

1985년 12대 총선 때는 신군부에 의해 해체됐던 신민당을 재창당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애국운동을 펼쳤다. 건국50주년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최근까지 대한민국건국단체총연합회 의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2015년 7월에는 6·25 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을 이끈 공적을 인정받아 65년 만에 참전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외교·안보는 여야 없이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33년간 평화문제연구소의 원로고문으로서 역할을 해온 그가 열렬히 바랐던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었다.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2015년 11월호)를 통해 “구세대의 막둥이, 신세대의 맏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그는 이제 대한민국 역사 속에 잠들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전 호남대 교수, 딸 이양희 유엔 미얀마인권보호관, 사위 김택기 전 의원 등이 있으며, 발인은 지난 3월 2일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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