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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 이신애, 이명수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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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옥중에서도 이어간 만세투혼, 이신애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동단의 제2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신애(음력 1891. 1. 20.~1982. 9.)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평북 구성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며, 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따라 원산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진학하여 주경야독 하던 중 결핵에 걸려 학교를 중퇴하였다가, 건강을 회복하고 1914년 성경여학교에서 공부한 후 1918년 루씨여학교 두산리분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선생은 이 무렵 부흥회에서 손정도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1919년 5월부터 혈성부인회에 가담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19년 9월에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온 강우규를 은닉해 주고 군자금을 모집해 의거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였다. 또한 1919년 9월 초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여 부인단 총대에 선출되었다.

당시 대동단은 조직 본부의 이동을 위해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망명시키고 제2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으나 일행이 만주 안동역(오늘날 단둥역)에서 체포되면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경의 체포망에서 벗어난 이신애와 나창헌 등은 같은 해 11월 28일 안국동 경찰관 주재소 앞 광장에서 다시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행인들이 모여들기도 전에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선생은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맞아 유관순 등과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심한 악형을 당하였다. 정부는 대동단의 여성대표로 제2 만세운동을 주도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이명수, 다윗과 골리앗 싸움 승리로 이끌다

국가보훈처는 ‘이명수’ 일등상사를 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0년 7월 북한군 제2군단은 낙동강 전선을 공격하고 대구와 부산의 길목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신속히 포항을 점령하려 하였다. 국군 제3사단은 이를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포항 북쪽의 영덕과 강구 중간지점의 요충지인 181고지 점령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에 제3사단은 18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특공대를 편성, 아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기로 결정한다. 흡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은 이 불가능한 임무에 이명수 일등상사를 대장으로 하는 12명의 특공대가 선발된다. 전우의 목숨을 무수히 짓밟은 적 전차에 조국의 땅이 더 이상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들은 분연히 적 전차에 맞서기로 한다.

얼마 후, 은폐 중인 적 전차를 발견한 특공대는 곧바로 전차 위에 올라타 수류탄을 안으로 투척하여 총 3대의 전차를 무력화시키면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둔다. 그와 특공대원들의 목숨을 건 용기로 인해 적군은 포항 진격에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탱크에 맞섰던 그의 투혼은 사병 최초로 군인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전설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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