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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 한 모금 담배 연기 속 북한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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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 담배 연기 속 북한을 보다

몇 년 새 담배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한쪽에선 세금 문제로, 또 다른 한쪽에선 경고 문구와 도안을 가지고서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담배, 그것은 군인의 외로움과 노동자의 고된 하루를 버텨내도록 하는 순간의 위로이기도 하고, 평생 매일 몇 갑을 태워 없앴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어느 문인의 치열한 낭만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러다 경제발전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의학적 담론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이것이 ‘타인의 건강을 위협해선 안 된다’는 민주적 합리성과 결합해 담배가 상징했던 낭만의 풍미는 낡은 시대의 몰지각으로 치부된 지 오래다.

이처럼 담배는 국가의 세제(稅制)를 대표하는 정치적 사물이자, 개개인의 권리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 우리의 판단이 최종적으로 근거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드러내주는 정치철학적 사물이며, 한 시대의 담론과 시대적 가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문화사적 사물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물이 이토록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사례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하나가 더 있다면 아마도 술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담배를 둘러싼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은 참으로 다채롭고도 경합적이다. 북한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존재하는데 몇 가지가 더 들러붙는다. 바로 권력과 뇌물의 맥락이다.

북한 사회와 담배, 이면에 숨은 권력과 뇌물의 맥락

예상과 달리 남한과 북한의 성인 남성 흡연율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남한의 금연 열풍과 같은 정도의 전 사회적 금연 운동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도 최근 금연에 대한 선전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금연에 대한 관심은 김정일의 소위 ‘3대 바보론’(컴퓨터를 모르는 사람, 음악을 모르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VOA>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담배통제법』을 채택(2009년, 2012년 수정·보충)하고 담배의 해독성을 선전하며 병원과 대중교통 시설 등 금연 장소를 지정했다고도 한다.

최근 들어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서도 부쩍 금연에 대한 보도가 늘었는데 “혁명을 위해선 건강해야 한다.”는 식상한 선전 문구로는 부족했던지 최근 들어 금연 광고에 여성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개편집물’로 불리는 40분가량의 교양물에서 10여 명의 여성이 등장해 남성들의 흡연에 관한 이런저런 못마땅함과 걱정, 바람 등을 쏟아낸다. 사회 변화를 바라는 ‘혁신’의 움직임을 여성의 권유와 남성의 깨우침으로 그려내는 모습이 북한의 대표적인 서사구조라고 본다면 아주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지하철 객실은 물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신 담배를 물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김정일 집권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2001년부터 담배를 끊기로 한 직후에는 전 인민적인 금연 운동이 잠시 일었지만, 김정일이 흡연을 재개하면서는 흐지부지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담배(혹은 시가)는 리더십의 상징으로, 때로는 소탈함을 피력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단적으로 김일성이 푸에블로호 사태를 진두지휘하면서 보였던 사령관의 이미지, 노인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인민적 소탈함의 이미지 등은 극도로 가부장적인 정치체제와 리더십 정서가 담배를 통해 만나는 장면으로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여담이지만 담배가 지닌 소탈한 리더십의 이미지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사후에 소개된 노무현 대통령의 일상 사진들 속에도 담배는 쉼 없이 등장한다. 담배를 둘러싼 ‘낭만’이 아직 남아있다면 그건 리더십의 낭만 정도쯤이 아닐까.

어린 김정은으로서는 개인적인 흡연의 유혹과 동시에 이러한 담배의 정치학적 유혹 또한 버리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회의석상에서 60~70대의 나이든 당 간부들 사이로 홀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서 담배의 정치는 정점에 달한다.

모든 일을 풀리게 하는 제의(祭儀)의 연기를 뿜다

이처럼 북한에서도 금연 캠페인이 일고 있지만 현실은 최고지도자부터 관료들, 국경 연선의 군인들과 검열일꾼들, 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보통의 인민들 사이로 일종의 담배 커넥션이 광범위하고도 일상적으로 뿌리박혀 있다. 뇌물 없이는 한시도 돌아가지 않는 북한의 일상 매커니즘에서 담배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 해결의 도구다. 담배가 이처럼 대표적인 뇌물이 된 것은 북한에서 담배가 하나의 기호품을 넘어 매우 극명하게 등급이 매겨지는 상품이자 사치품의 하나로 소위 ‘최고급’ 담배가 출시되는 사정과 관련된다. 우리로 치자면 그 옛날 양주가 지금 북한의 담배 쯤 될까.

아무튼 시장화 된 북한의 풍경은 모든 곳에서 차별적 소비의 욕망이 강렬하게 꿈틀대는 모습이다. 고작 담배 하나에 무슨 최고급이 있을까 싶지만, 모든 것이 극도로 열악하기에 그만큼 작은 것에서도 최고급을 욕망하는 모습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혼자일 때는 말아서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조잡한 ‘마라초’를 태우고, 친구들을 만나서는 ‘좋은 담배’를 태우고, 당 간부나 보위부, 보안서 간부들은 ‘시장에 없는 담배’, 즉 외화 상점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외국(특히 미국, 일본) 담배를 태운다.

북한을 휘감는 ‘구별 짓기’의 욕망과 일상화된 뇌물 커넥션,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담배는 모든 일을 풀리게 하는 일상적 제의(祭儀)의 연기를 뿜어낸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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