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겨레말 | “내 오늘 야근인데 좀 바래다 주갔어?”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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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겨레말
“내 오늘 야근인데 좀 바래다 주갔어?”
내가 꼬마였을 때 밤늦게까지 일하는 누나를 마중하러 엄마 손 잡고 버스 정류장에 나간 적이 있다. 13살이나 차이 나는 누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혹시나 귀여운 막냇동생에게 누나가 맛있는 과자라도 사줄까 하는 마음에 엄마를 따라나섰던 것이다.
누나가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 늦은 시각에 여기 왜 나와 있는 거니?”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누나가 철야를 해서 마중 나왔어요.”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 피식 웃고는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가버렸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가 왜 웃는 거지? 이상한 아저씨네.’
몇 년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난 아저씨가 웃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야를 한다는 말은 밤샘 근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누나가 야근을 해서 마중 나왔어요.”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는 것인데 철야라고 했으니 아저씨가 웃을 만도 했다.
야근,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다 아는 말이다. 그리고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퇴근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니 썩 좋은 말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공공의 적’인 이 ‘야근’에 남북 차이가 있다.
북에서 ‘야근’은 퇴근 시간을 넘겨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2교대 근무 시 낮이 아닌 밤에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북에서는 남과 달리 ‘야근 교대’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야근’에 ‘바래다주다’가 같이 쓰인다.
이러한 차이는 하단의 북측 용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쪽에서 생소한 말은 ‘전야근, 후야근’이고, 남쪽에서는 ‘교대’, ‘바래다주다’ 등의 말이 야근’과 같이 쓰이지 않는다. 이러한 남북 간 의미 차이로 인해 북에만 생긴 말이 ‘전야근, 후야근’이고, 이는 남과 북의 사전 풀이에 잘 나와 있다.
만약 북에 가서 “나 어제 야근해서 피곤해요.”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북쪽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이런 동무 한숨도 못 잤겠네. 얼른 집에 가서 푹 주무시오. 동무의 건강이 조국 번영에 이바지하는 길이니까. 얼른 가시오, 얼른.”
《표준국어대사전》
야근 : 퇴근 시간이 지나 밤늦게까지 하는 근무
밤대거리 : 주로 광산에서, 밤낮 교대로 일하는 경우 밤에 일하는 대거리
《조선말대사전》
야근 : ⇒ 밤대거리
밤대거리 : (낮과 밤으로 엇바꾸어 일하는 경우에) 밤에 일하는 대거리
전야근(前夜勤) : (밤작업을 전후 두 교대로 나누어 할 때) 앞의 밤교대나 그 근무
후야근(後夜勤) : (밤작업을 전후 두 교대로 나누어 할 때) 나중번의 밤교대 근무
• 북측 용례
⊙ 직장 현장에 일근, 전{야근}, 후{야근} 3교대 노동자들 2백 수십 명이 모여 종업원 모임을 가지고 조태윤의 장례비와 그 가족에게 위자료를 지불할 것 등 공장 측에 들이댈 두 가지 요구조건을 가결하였다.《리북명 : 등대》
⊙ 엑스까와똘에서는 칠성이네 조가 일하고 있었고 전{야근} 교대를 할 두 사람은 짤목을 구하기 위해 사업소에 갔었다.《최학수 : 얼음장 밑에서 찾은 봄》
⊙ 전에는 전 밤길도 혼자서 못 걷는 겁쟁이였어요. 그래서 {야근}하는 날이면 꼭꼭 오빠가 바래다 주곤 했어요.《최재석 : 불새》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