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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힌두교 사원 귀속권 어디로?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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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31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힌두교 사원 귀속권 어디로?

지난 2008년 7월 23일 캄보디아 군이 태국 국경 인근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08년 7월 23일 캄보디아 군이 태국 국경 인근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

태국은 예로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다. 반면 캄보디아는 앙코르 왕국 시절을 제외하고는 태국과 베트남의 간섭과 지배를 받아왔다. 1940년 주축국인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태국은 라오스 전역과 캄보디아 서부 지역, 버마의 샨(Shan) 지방, 그리고 말레이시아 북부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했다. 또한 프랑스에 바탐방과 씨엠립(Siem Reap) 지역의 반환을 요구했다. 프랑스가 이 제의를 거절하자 군대를 동원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을 공격했다. 1945년 일본의 패배로 프랑스 군대가 프놈펜에 진주했다. 이때 프랑스는 태국을 위협해 바탐방과 씨엠립 지역을 다시 반환받았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 유네스코 등재 둘러싸고 무력충돌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 등거리 외교를 통해 공산주의 세력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와 같은 캄보디아의 입장은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1961년 외교관계가 단절되기까지 했다.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와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자국의 안보 위협이 증대되자 미국에게 군사기지 사용을 허용하는 등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세력 봉쇄에 동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국경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1934년 태국은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 힌두교 사원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1904년에 제작된 부록 지도와 국경조약 시 언급되었던 분수령이 국경선과 일치하지 않는 오류를 발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문제로 삼지 않다가 1950년 들어 사원 지역에 일방적으로 국경수비대를 배치했다. 프랑스는 당시 캄보디아 식민지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태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캄보디아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 관련 국경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태국에 회담을 제의했으나 태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양국 간에 잠재되어 있던 이 문제가 무력충돌로 발전한 것은 2008년이었다. 당시 캄보디아는 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하는 과정에서 사원과 인접 지역을 자국의 영토 경계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태국은 군대를 출동시키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2008년 7월 이후 캄보디아 군과 태국 군 약 4천 명 이상이 국경 지역에서 대치했다.

2009년 4월 3일 합동국경위원회가 개최되기 며칠 전 지뢰 폭발로 태국 군 병사 한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국경 부근에서 태국과 캄보디아 군이 충돌했다. 양국의 긴장 속에 2009년 4월 6~7일 합동국경위원회가 열렸으나 군대의 철수나 국경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는 없었다. 2009년 8월에 접어들면서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사원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캄보디아 군 중 일부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로 양국 간의 긴장은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2010년 1월 24~29일 양국 합동국경위원회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에 사원 인접 지역에서 태국 군과 캄보디아 군 간에 간헐적인 총격전이 벌어졌다. 1월 31일에는 캄보디아 영토를 침범한 20여 명의 태국 군을 캄보디아 군이 공격해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2월 말에는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국경 지역을 방문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안건을 회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3월 말에는 양국이 국경 지역에서 사망한 군인 수를 놓고 서로 분쟁에서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갈등이 심화됐고, 이러한 갈등은 4월에 접어들어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다시 고조되었다. 2011년 들어 양국 간의 국경 분쟁은 제한전쟁 수준으로 격화되었다. 한 해 동안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13만 명 이상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2012년 들어 양국의 국경 분쟁은 2011년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2011년 국제사법재판소가 결정한 사원 지역에서의 양국의 군대 철수를 서로 이행하지 않았고, 1월 25일에는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의 총격전으로 태국 군 1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4월 11일에는 양국 국경 지대의 불법 수목벌채를 막기 위해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협의하면서 프레아 비히어 사원 인근 지역에 배치했던 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대신 경찰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7월 18일에는 지난 4월에 합의했던 관련 지역 군 병력 철수 및 경찰 병력 대치가 이루어지면서 양측의 국경분쟁은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지도

태국과 캄보디아 지도

국민감정 및 이해관계 대립에도 경협 가능성 열어놔

양국 간의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국경 분쟁은 2015년에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완화된 상태를 유지했다. 2014년 합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 인근 지역과 사원 영내에 배치되어 있던 군 병력 철수와 국경순찰 전담 경찰 병력 배치안’은 순조롭게 이행되었다. 이 합의는 그동안 갈등의 중심이 되었던 프레아 비히어 사원 영내에 군대가 아닌 경찰을 배치함으로써 양국 군 충돌의 개연성을 줄이는 조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 분쟁에는 국민감정 및 국내정치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양국 중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분쟁이 타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이 현재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놓고 충돌을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한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상호 이익이 일정부분 보장될 수 있는 방식으로 협의가 이루어진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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