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통일독일 현장연수 | 소통에 기반한 자정능력, 통일독일의 힘!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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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통일독일 현장연수

소통에 기반한 자정능력, 통일독일의 힘!

 

과거 내독 간 국경지역이었던 독일 튀링엔 주 가이자 시에 위치한 포인트알파 박물관 경내에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과거 내독 간 국경지역이었던 독일 튀링엔 주 가이자 시에 위치한 포인트알파 박물관 경내에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문제연구소와 한스자이델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6 통일독일 현장연수가 지난 10월 23일부터 30일까지 6박 8일간 독일 현지에서 진행되었다. 그간 평화문제연구소는 양질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올해 현장연수는 연방의회와 정치교육원을 비롯하여 구동독 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청산재단, 마리엔펠데 구동독 이탈주민 임시수용소 박물관 등 통일과 관련된 총 15개 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연수에는 필자를 포함해 노재동 평화문제연구소 고문(전 서울시 은평구청장), 현동일 중국 옌볜대학교 교수, 림관헌 미국 환태평양문화재단 이사장,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본부장,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센터장, 김영수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사실 여태껏 독일의 통일 경험 앞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종의 열등감을 경험해왔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이나 조건이 확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통일을 이미 이룬 국가’, 우리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국가’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덧씌우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일까? 아니면 통일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나 부러움일까? 그 근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제한적인 인식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교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 자신에 대한 초라함만 커질 뿐이다.

2016 통일독일 현장연수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비교를 위한 비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독일을 바라보기로 했다. 역설적이지만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 힘을 알게 될 때 우리도 우리만의 통일 루트를 고안해 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연방정치교육원에서 연수단이 헬무트 쿤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연방정치교육원에서 연수단이 헬무트 쿤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누구든 가르치고 누구든 배운다 일상이 된 정치교육

그러자 이전에는 미처 알 수 없던 독일만의 다양한 매력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은 바로 16년 전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그리고 오늘날에도 사회 내 다양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그네들의 일상적인 정치문화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범한 시민들과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교육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교육을 시행하는 사람과 교육의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에게 정치교육은 일상의 일부였다.

연수 일정 중 가장 먼저 방문한 연방정치교육원 베를린 분원에서는 본 기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독일의 정치제도 전반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강사 헬무트 쿤(Helmut Kuhn)은 정치교육원이 독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고 연수단원들의 여러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는 정치교육원 소속 직원이 아니라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었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외부강사의 형식으로 정치교육에 몸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관계자가 아니라 외부인의 시선으로 연방정치교육원을 평가하기도 했다. 연간 예산이 총 4천만 유로로 그리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정치교육원이 이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친 후 자전거를 타고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그에게 있어 정치교육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상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방문한 연방의회에서도 정치교육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총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의회 곳곳에서 견학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본회의장 방청석에서는 학생들이 의회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질문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회의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이처럼 의회 견학과 정치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방청석이 꽉 찰 정도로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하다고 한다. 이처럼 베를린 시민에게 정치현장은 멀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에르푸르트 시에 위치한 튀링엔 주 정치교육원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통일 이전과 이후 튀링엔 주가 경험한 다양한 성공·실패 사례 등에 대해 강의를 들었는데, 연수단이 정치교육원을 나설 때쯤 이곳에 발걸음한 마을 주민을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애완견과 산책을 하던 중 정치교육원에서 제공하는 지역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것이었다. 종종 이곳을 들르며 지역의 소식을 듣고 정치 이슈에 관심을 가진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민들의 일상에 정치교육원이 얼마나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픈 과거 지우지 않아 끌어안고 간다, 기억하고 산다

독일은 일상적인 정치교육과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와도 역시 함께 살아가는 듯 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장벽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방문한 체크포인트 찰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장벽 박물관 등은 의도적으로 장벽을 남겨둔 곳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념비적 장소가 아니더라도 베를린 시내 전역에서 동·서베를린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면서 혹은 길을 건너면서도 과거 동·서독을 넘나들었다. 장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 흔적마저 없었던 것으로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 가운데서 과거를 기억하며 끌어안고 있었다.

베를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독 간 국경선이 있던 가이자 시에서는 분단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포인트알파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분단 시절 설치된 순찰차로와 철조망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건물을 지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방문객들이 밟는 그 순찰차로는 30여 년 전 구동독 순찰차가 오가는 바로 그 길이었다.

뉘른베르크 제2차 세계대전 전범재판소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너무 무거워서 역사적 현장으로만 남겨둘 법한 장소를 오늘날까지도 법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는 살인과 같은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 재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수감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교도소도 그대로였다. 전시관이 있는 3층에서 교도소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창문 한 편에 과거의 모습을 사진으로 붙여놔 현재와 과거를 비교할 수 있었다. 아픈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튀링엔 주 정치교육원. 다양한 지역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튀링엔 주 정치교육원. 다양한 지역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성 포용하며 잘못은 걸러낸다 독일의 자정능력

이처럼 독일은 서로 다른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고, 지금도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나 잘못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니었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단정 짓거나 즉각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소통과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잘못은 걸러내는 자정능력, 이것이 바로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 힘이었다.

현재 독일은 또 다른 이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로 유럽 지역 난민 문제다. 우리가 에르푸르트 중앙역을 방문했을 때 이 사안에 대한 극우세력의 집회가 준비 중이었고 또 그에 대응하는 반(反)극우 집회도 이후 열렸다고 한다. 갈등과 대립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때로는 시행착오와 실패 사례를 남기면서도 민주적인 방식과 가치를 따라 이견을 조정해나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이 문제 역시 건강하게 다뤄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볼 수 있었다.

결국 어떤 과제와 문제를 겪고 있는지 보다 그것을 다루는 주체가 어떠한지가 관건이다. 우리 앞에 놓인 참으로 거대해 보이는 통일 문제, 그 해결의 열쇠도 결국 우리가 쥐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떠한 나라, 어떠한 사회, 어떠한 우리가 될 것인지 깊이 고민하여 필요한 능력을 키워나간다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통일 문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힘으로 통일을 이루게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김가나 /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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