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2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노느라 낚고, 먹느라 낚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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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9

노느라 낚고, 먹느라 낚고

 

나는 낚시질로 온종일 시간 보내는 사람을 보면 얼핏 두 가지 생각을 한다. 하나는 “저 사람은 돈도 있고 시간도 많은 사람인가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도박이나 주색잡기에 빠진 사람에게 낚시질을 시키면 다 끊는다던데…”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낚시터에 주구장창 앉아 지내는 사람을 보면 시간이 부족한 입장에선 그 사람 처지가 부럽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당연지사다. 여유만 되면 나도 그러고 싶다. 파란 하늘 아래 물새 날아오르는 잔잔한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한없이 명상에 잠기는 그림 같은 모습은 오래 전부터 그려온 환상이다.

그러나 단 하루도 그래본 적 없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남한에 와서 낚싯대를 좀 잡아봤지, 북에서는 남이 하는 걸 몇 번 구경하며 거들어 준 것뿐이다. 남한에서 난생 처음 낚싯대와 미끼 파는 곳에 가봤고 산천어축제, 얼음낚시 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어쩌다 기회가 생겨서이지 내가 원하던 대로 조용한 호숫가에서 명상에 잠긴 채 홀로 하는 낚시는 아니었다. 남한엔 낚시터가 많고 고기도 많다. 아예 낚시터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장도 있다. 그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물론 그 중엔 내가 생각하는것처럼 백수나 게으름뱅이, 도박꾼, 바람둥이였다가 낚시중독자가 된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경제적 여유와 문화생활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시간은 있고 할 일은 없으니

북한에는 낚시질하는 사람이 평양에 제일 많다. 주로 노인들인데 시간은 있고 할 일은 없어서 그렇다. 지방 같으면 뙈기밭농사라도 짓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장사를 하고 싶어도 시장에 자리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대동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잡히거나 말거나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는 고기가 별로 잡히지도 않는다. 온종일 잡아서는 술안주를 하거나 팔아서 몇 푼 챙긴다. 북한 당국이 대동강에서 낚시하는 풍경을 사회주의 선경이라고 화보에 내고 선전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동강에서 낚시질 하는 노인들과 한나절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 집에 있으면 온종일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나온다고 했다.

낚싯대 구할 형편조차 못되는 노인들은 제방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버들가지를 꺾어 낚시질 할 수도 있겠지만 평양은 지방과 좀 다르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비교의식도 유별나 차라리 없으면 말지 나뭇가지에 줄을 매 낚시질 하는 꼴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지방은 버들가지로 낚싯대를 만들었든 줄낚시를 던지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비교의식이 낮기 때문이다. 고급 낚싯대를 가진 사람을 보면 신기해하는 것으로 끝이다. 오히려 값이 고가인 것을 알고는 “그 돈이면 차라리 고기를 사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낚시질이 문화생활이 아니라 생계수단의 하나로 여겨지는 정서다.

따라서 무슨 도구를 사용하든 고기만 잡으면 된다. 줄낚시도 평양에선 ‘강도낚시’라며 단속하는데 지방은 상관하지 않는다. 고기만 잡힌다면 폭약, 전기, 약물 등도 몰래 사용한다. 평양에 비해 평균 생활수준이 낮고 통제와 처벌이 심하지 않아서다. 지방의 ‘자유’가 평양의 ‘화려함’보다 낫고 한마디로 ‘막 살기 좋은 곳’이 지방이다.

대동강에는 낚시꾼 노인들 간에도 섞이는 패가 따로 있었다. 말하자면 계급이 있는 셈인데 낚싯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싸구려 낚싯대를 든 노인들과 “내 것은 독일산이요, 일본산이요.” 하며 고가의 낚싯대를 뽐내는 노인들이 따로 놀았다. 고급 낚싯대를 들고 나온 노인들은 은퇴 전에 직위도 좀 있었고 자식들도 떵떵거리는 자리에 올려놓은, 남한 식으로 말하면 노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심풀이로 나오다가 중독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은 소수다.

한강에 떠다니는 물고기 왜 안 주워갈까?’

북에선 낚시질이 문화생활이 아닌 생계수단의 일부로 전락했다. 낚시질의 목적이 남한과 다르다. 남한에선 낚시질이 여가생활이지만 북한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한 천렵이다. 물론 남한에도 전문 어업낚시가 있지만 북한은 모든 낚시가 어업낚시인 셈이다. 잘 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잡은 고기는 먹거나 팔지 남한에서처럼 재미로 잡아보고 다시 놓아주는 일은 거의 없다.

한강에 처음 놀러 갔을 때 죽은 고기가 떠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명태만큼 큰 고기들이 죽어 있는데 아무도 건지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오래 살아 늙어 죽었는지 병들어 죽었는지 모르지만 겉으론 멀쩡했다. 우리 동네 중랑천에도 팔뚝만한 고기가 우글거린다. 잡으면 안 된다고 단속한다지만 그게 아니라도 잡아먹는 사람이 없다. 수질이 깨끗한데도 고기가 오염되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었으면 다 잡아먹고 없을 것이다. 광산에서 나온 시퍼런 오수가 흘러드는 강에서도 고기를 잡아먹는다. 약을 살포해 잡은 것도 내장을 들어내 먹어봤다. 낚시 한 가지를 놓고도 이렇듯 남북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서글프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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