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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꽃 피는 봄이 오면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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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3

꽃 피는 봄이 오면

 남한에는 꽃이 정말 많다. 봄부터 시작해 겨울이 오기까지 언제 어디서든 꽃을 볼 수 있다. 진달래 축제, 벚꽃 축제 등 갖가지 꽃 축제도 줄을 잇는다. 일부러 축제에 가지 않더라도 집밖에만 나서면 사방에 꽃이다. 야외는 야외대로 꽃이 많고 집과 사무실에도 화분에 꽃이 있다. 특이한 것은 꽃송이의 크기와 양에 비해 꽃나무 잎이 적은 것이다. 북한의 꽃과 같은 종인데도 색이 더 진하고 싱싱해 약간 거리를 두고 보면 인공적으로 만들어 붙인 조화처럼 느껴진다. 향을 맡아봐도 남한 꽃이 북한 꽃보다 향기가 짙지 않다. 궁금해 알아보니 대개 원종이 아니라 개량종이라고 한다. 북한에 살 때 개량종 꽃을 본 기억이 없다. 하기야 꽃 따위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으니 보고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남한은 화훼산업 규모도 대단하다. 아마 전국적으로 결혼식, 장례식, 개업식, 생일파티 등에 쓰이는 꽃을 모아보면 큰 산을 이룰 것이다. 각종 행사장에서 쓰고 난 화환과 화분들을 처리하기도 귀찮을 정도다. 한때는 버리기 아까워 화분들을 골라 집에 가져온 적도 있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괜히 쓰레기 처리할 일만 많아져 그만뒀다. 꽃 배달도 발달해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송지에 도착한다. 이 정도면 꽃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꽃 심을 땅 있으면 콩이나 채소 한 포기라도 더

하지만 북한은 한 지맥을 이은 땅임에도 꽃이 많지 않다. 북한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해버려 그런 것도 있겠지만 거리와 마을에도 꽃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꽃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거리와 마을, 산과 들에 온갖 꽃이 만발하면 아름다운 줄 몰라서가 아니다. 평양을 제외한 도시들에서는 이미 있던 꽃밭들도 사라져가는 형편이다. 주택지구 공간에 꽃을 심을 땅이 있으면 콩이나 채소 한 포기라도 더 심는 것이 현실이다. 먹을 것이 첫째고 꽃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공원의 꽃은 퇴화되어 어설프게 피어있고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꽃을 함부로 뜯어버려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꽃 관리가 되는 곳은 주로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 사적지, 전적지, 1호도로 주변이다. 꽃이 우상화를 위한 용도로만 가치를 가지는 셈이다.

북한 주민들이 꽃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쓸 기회는 명절날 동상에 증정해야 할 때뿐이다. 하지만 생화가 부족해 종이나 비닐로 만든 조화를 가져간다. 충성심을 보여주려면 생화를 가져가는 것이 좋지만 구하기 어렵다. 그래도 간부들에게 잘 보여 점수를 좀 따려면 생화를 얻어가는 것이 좋다. 그것을 노리고 꽃 장사를 하는 이들도 생겼는데, 아마 북한에 민간 화훼산업이 있다고 치면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명절에 맞춰서 꽃을 피워 장마당에 들고 나가거나 입소문으로 판다. 그렇지만 동상에 매일 꽃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므로 그것으로 먹고 살수는 없고 보탬이 될 정도다.

설사 꽃을 많이 피웠더라도 수요자가 많지 않다. 형편이 좀 넉넉한 집들에서 결혼식, 환갑잔치 등에 생화를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비닐로 만든 꽃을 사용한다. 집과 사무실에 화분을 들여놓고 꽃이나 선인장을 키우는 사람들은 거기에 취미를 가진 특별한 경우다. 오히려 화분에 꽃보다는 고추, 파, 토마토 같은 것을 키우는 사람이 더 많다. 이것은 북한이 남한처럼 화훼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호강하는 꽃?

북한에 국영 화훼산업이 있다면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꽃을 돈을 받고 팔 목적이 아니므로 그것을 화훼산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다만 꽃을 대량생산하는 곳이 그곳뿐이다. ‘김일성화’, ‘김정일화’는 북한에서 호강하는 꽃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은 지원을 받는다. 부족하면 주민들에게 부담을 떠안겨서라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수십 년 전 북한 경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시기에는 일반 화초를 가꾸는 온실들이 있었다. 또 거리에 ‘꽃방’이라고 간판을 단 매점이 있었는데 꽃다발, 꽃바구니, 화환, 화분 등을 팔았다. 하지만 경제난과 함께 사라졌고 평양에만 약간 남아있는 실정이다. 평양은 지방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고 꽃을 들고가야 할 정치 행사가 많아 상대적으로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꽃이 한창 만개할 이 계절, 꽃 하나 가지고도 남북 경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 착잡하게 느껴진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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