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5월 1일 0

이달의 인물 | 방정환, 백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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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방정환, 백재덕

청소년이여, 일어나라! 방정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1899~1931) 선생을 2017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으며 1905년 보성소학교 유치반에 입학하였다. 이후 매동보통학교와 미동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천도교 활동에 치중하여 졸업하지는 못하였다.

1917년 권병덕의 중매로 천도교주인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1918년 7월 7일 방정환은 이중각과 함께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청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방정환은 1920년 ‘어린이 노래’(<개벽>3, 1920)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늙은이’, ‘젊은이’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어린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21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를 조직하였으나, 1921년 11월 10일 태평양회의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혐의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3년에는 소년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고,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소년운동을 주도하였다.

선생은 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민족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가 무리한 활동으로 인해 1931년 7월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만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1990년 방정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백재덕, 필사즉생의 의지로 전선에 서다

국가보훈처는 백재덕 육군 이등상사를 5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백재덕은 휴전이 임박한 1953년 5월,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으로 중부전선의 금성·김화지역 주저항선에서 매복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부대가 지키던 샛별고지는 상호 접근이 곤란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매복작전 중 백재덕은 중공군 3개 중대가 진지로 접근해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백재덕은 침착하게 접근을 기다렸다가 수류탄을 투척하고, 중공군 1파 15~16명이 진내로 돌입하자 과감한 백병전으로 격퇴시켰다. 중공군 2파가 다시 공격해오자 적을 지근거리까지 유인하여 사살하고, 중공군 3파가 다시 진내로 진입하자 적 10여 명을 분대원 6명과 함께 백병전 끝에 총검으로 무찔렀다.

바다처럼 밀려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분대원 6명이 전사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백재덕은 목숨과 바꾸겠다는 결전의지와 비장한 리더십으로 끝끝내 매복진지를 지키고 주저항선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였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몸을 사리지 않는 용맹한 군인정신을 인정받아 1954년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하였고, 태극무공훈장 및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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