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5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얼음’이 얼려버린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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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75 

얼음이 얼려버린 첫사랑

 

지난 2016년 8월에 입국한 젊은 남자 김해(가명) 씨는 척 봐도 인물이 훤한 사람이다. 훤칠한 키에 하관이 좁고 넓은 이마에 이글이글 타는 눈빛을 가졌다. 언변도 좋아 마주 앉아 북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왜 탈북했냐는 물음에 그는 윗옷을 걷어 올리고 배와 가슴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랐다. 겉은 미끈하지만 속은 상처투성이다. 몽땅 다 보위부와 보안서에서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했다.

잡히면 다시 탈북하기를 반복해 아홉 번째 시도 끝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덟 번째 북송에 보위부는 ‘이 자식, 다시는 걷지도 못하게 하겠다.’라며 그의 오른쪽 다리를 몽둥이로 내리쳤다. 천만다행으로 민간치료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만나 부서지고 꺾인 다리를 치료했다고 하지만 그는 지금 약간씩 절며 걷는 사람이 됐다.

그런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한국 입국을 이루어낸 열정에 혀를 내두르자 이 사람이 하는 말이 ‘그게 다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 낳은 결과 아닙니까?’라며 듣는 사람들을 웃겼다. 북한 정권이 늘 하는 선전이다. ‘찬물에 맨밥을 말아먹어도 혁명만 하면 영광이어라.’ 하는 따위의 노래를 지어내고 혁명가는 절해고도에 갇혀도 장군님을 따르는 혁명정신만 가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곳이 없다며 배고픈 사람들을 얼렸다. 바로 그 정신으로 백 번 천 번 잡혀 몸이 망가져도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탈북했을 것이라며 김 씨는 주먹을 흔든다.

첫사랑 때문에 탈북하다

무슨 이유로 탈북을 결심했냐고 물었을 때 김해 씨는 첫사랑 때문이라며 웃었다. 그의 첫사랑이었던 여성은 군에서 제대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하루라도 못 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백리 길을 걸어서라도 얼굴 한 번 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단다. 그런데 현재 같이 한국에 왔냐고 묻자 “아니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입니다. 그 얼굴이 보기 싫어 탈북했는데요.” 한다. 흥미를 가지고 쳐다보는 많은 눈길들을 둘러보고 나서 그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강원도 금강군의 깊은 계곡에서 군 복무를 한 김 씨는 28살에 제대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군복을 입고 1군단 직속 부업지에서 노루와 사슴을 키우는 일을 9년이나 하다 제대했으니 사회에 대해 알면 무엇을 알까 싶기도 했다. 일반인 왕래가 금지된 깊은 계곡에서 땅을 일궈 농사를 지어 배고픔을 모르고 군 생활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제대 후 고향인 회령시에 돌아갔을 때 고향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가슴 속에는 당과 수령을 위한 충심에 한 치의 그늘도 없었는데, 고향 사람들은 ‘살아도 죽어도 장군님을 위하여’ 하는 혁명정신을 기르던 개한테 다 줘버린 듯 보였다. 생각했던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돈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학습회나 생활총화 따위들은 형식만 남아 있을 뿐 그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술 한 잔 마셔도 돈 소리뿐이었다. 누구는 영양가가 있고 누구는 만나도 시간낭비라는 둥 ‘너도 이제 먹고 살려면 그 대가리 속을 싹 다 바꿔야 한다.’며 일장훈시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면서 헤어지기 전에는 빙 둘러앉아 삥두(마약)를 콧구멍으로 들이켰다. “이거 세상이 어찌 될라나.”하는 생각에 앞이 아득했지만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마약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것만은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꼭 지키리라 맹세를 다졌지만 주변 환경이 그러하니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국경 장사를 시작했고 돈도 조금 모아 점차 새 삶에 익숙해 질 무렵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자에게 홀랑 빠졌다고 한다. 그에게는 첫사랑이었다. 그만큼 소중했다. 만나자마자 삥두를 뜻하는 ‘얼음’을 흡입하냐는 것부터 물었다. 여자도 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런 일은 자기도 하지 않는다며 졸졸 따라다녔다고 했다.

네 색시감도 이걸 해서

그러나 사건은 만난 지 두 달 만에 터졌다. 동창 집에 술을 한 잔 하러 갔는데 친구가 삥두를 꺼내놓고 한 모금씩 마시자고 하는 것이었다. 단박에 거절하자 “이건 온 국민이 다 하는 건데 너 달나라에서 왔니?” 하며 부부가 같이 한 모금씩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네 색시감도 이걸 매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얼굴색이 좋고 늘 반짝반짝 웃는 거야. 같이 궁합을 맞추려면 너도 배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길로 단박에 뛰쳐나와 여자를 만나 따졌다. 여자는 단호했다. “이제는 너무나 일상적인 건데,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이 아직 있나요?” 하며 쏘아보는 것이었다. 그때처럼 그 여자가 악녀 같이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 탈북을 결심했다고 하며 김 씨는 이런 말로 이야기 끝을 맺었다. “실제로 삥두를 단속은 하지만, 북한에는 이미 마약이 상당히 만연해 있습니다. 공공연한 기호품처럼 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한 마디로 온전한 사회는 아니죠.”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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