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8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A4 용지가 교사 월급 맞먹던 시절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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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56

A4 용지가 교사 월급 맞먹던 시절

북한 민들레학습장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공책 ⓒ연합

북한 민들레학습장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공책 ⓒ연합

남한 정착 첫 해에 있었던 일이다. 프린터를 처음 구매하고 인쇄용지를 사러 아파트 상가에 있는 문방구로 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쇄용지를 어디서 파는지도 몰라 여기저기 물어볼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100매짜리 인쇄용지를 3천 원에 사들고 나오다 갑자기 한 장당 가격이 궁금해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한 장에 30원? 이렇게 저렴할 수가!” 그때부터 인쇄용지가 필요하면 부담 없이 상가에 가서 구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어느 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인쇄용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좋은 질의 종이가 100매에 3천 원이라니요? 북한의 교사들은 교수안 용지도 넉넉지 않습니다. 이런 종이는 북한에서 고급종이에 속해요.”라고 말하는데 일부 학생들이 키득키득거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북한에서 온지 얼마 안 된 나의 말투가 이상해 그러나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착 3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대형마트로 쇼핑을 갔다. 우연히 학용품 매장에 갔는데 또 한 번 놀랐다. 인쇄용지가 500매에 3천 원 돈인 것이었다. 그제야 예전에 수업에서 아이들이 왜 키득거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늘 부족했던 학습장, 시장 확산으로 달라져

북한에서는 교수안 용지뿐 아니라 아이들이 쓰는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귀하고 비싸다. 학용품에 대해 말하자면, 필자가 북한에서 자라던 중학교 시절(1970~1980년대)에는 학습장, 연필, 만년필, 그리기 도구 등 모든 것들을 상점에서 세대별로 공급해주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습장 몇 권씩을 국정가격으로 공급해주던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공급이다보니 양이 넉넉할 리 없었다. 자녀가 많은 집에서는 늘 학용품이 부족해 아이들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그칠 새 없었다.

특히 학습장은 늘 부족했다. 숙제가 많아 필기거리가 많은 과목은 학습장이 학기당 10권 이상 필요했다. 이렇게 모든 아이들이 학용품 부족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늘 넉넉히 쓰는 학생이 학급에 몇 명씩은 꼭 있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회주의는 부패로 서식하는 사회’라고.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늘 넉넉하게 학용품을 마련해주었다.

당시에는 교사들에게도 교수안 용지로 종이를 일부 공급해주기도 했다. 까만 색깔에 터실터실한 종이였다. 문제는 시범수업 때 내놓을 교수안이다. 말 그대로 시범으로 내놓아야 하는데 검은 종이에 쓸 수도 없고, 흰 종이는 너무나 귀해 얻기가 힘들다. 아버지가 당 기관이나 행정, 법기관에서 간부로 일하는 학생들을 통해 겨우 얻어 쓸 정도였다. 그것도 양이 충분치 못해 교수안 몇 장 작성할 분량만 어렵게 확보했다.

그런데 북한에 시장이 확산되면서 학생과 교사들의 이러한 안타까움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국가 공급체계가 마비되고 시장에 의존하면서 학용품도 시장에 대대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보기도 힘들었던 ‘흰 눈보다 더 흰’ A4 용지와 학습장들이 학생들의 눈을 현혹하기 시작했다. 질 좋고 반들반들한 학습장에 차마 글을 갈겨쓰기가 겁날 정도로 좋았다. 그 외에도 볼펜, 만년필, 물감, 삼각자, 심지어 학교에서 희귀품에 속하던 분필까지 등장했다. 거의 다 중국산이었다. 국산이라면 함경북도 길주팔프공장에서 생산되는 A4 용지가 전부였다. 물론 중국산 A4 용지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지만 말이다.

선생님 선물은 귀한 A4 용지로

요즘에는 북한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시장에서 남한 A4 용지와 비슷한 질의 종이를 살 수 있다. 국경지역을 통해 밀수로 들어온 학용품들이 전국에 퍼지며 학생들의 필요를 채운 것이다. 대신 가격이 비쌀 뿐이다. 북한이 2009년 화폐개혁을 하기 이전에는 A4 용지 한 장에 북한 돈 20원, 100매에 2천 원이었다. 당시 중학교 교사의 월급이 보통 2,500원 정도였으니 사무용지 100매가 교사들의 월급을 밑도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학교 앞에는 늘 장사꾼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과 학용품을 가져와 팔고, 수업준비를 못해온 학생들은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쉬는 시간에라도 나가 필요한 학용품을 산다. 심지어 장사꾼들은 안면이 있는 교사들을 통해 학용품과 교구용품들을 시장보다 싼 가격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교육현장에서의 촌지 문화도 바뀌었다. 북한에서는 교사들에게 선물의 명목으로 촌지를 주는 게 일종의 예의이고 문화이다 보니 학생들이 교사에게 A4용지를 선물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사회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학생들의 학용품 문제를 자본주의 시장이 해결한 이 상황을 학부형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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