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월 2일

통통인터뷰 | “키보드 위에서 통일은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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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인터뷰 | 조석환 한국정보관리협회장

키보드 위에서 통일은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조두림 / 본지기자

조석환 한국정보관리협회회장

조석환 한국정보관리협회장

Q. 통일자판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A.  저는 전산전문가로 수십 년을 일했습니다. 현재는 2004년부터 국가기술표준원 국가컴퓨터자판 위원장을 맡고 있고요. 자판에 있어서는 ‘왕초’죠. 때문에 국내 자판과 관련한 이슈들에 익숙하고, 역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제 전문성과 통일을 연결지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한창 타자기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병우의 3벌식 타자기냐, 김동훈의 5벌식 타자기냐’, 어떤 것을 국내 표준으로 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10년 가까이 시비가 있었어요.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 일례로 학교에서 3벌식으로 타자를 배웠는데 사회에서 5벌식을 사용하면 결국 학교에서의 타자 교육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국가 전체적으로 타자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어요. 오랜 논쟁 끝에 결국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 주도로 타자 방식을 통일했습니다. 논란의 3벌식도 5벌식도 아닌 4벌식이라는 대안책으로요.

제 전문 분야에서 그런 갈등 사례를 겪었으니 자연스럽게 타자 통일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흘러서 제가 2005년에 남북IT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현재 남과 북은 각기 표준어(남한)와 문화어(북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자판도 다릅니다. 그 말은 즉, 통일이 되면 남북한 표준자판 문제로 얼마든지 논쟁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통일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키보드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통일자판을 사용하면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키보드를 쓰면서 지난 분단 70년 세월처럼 남남으로 지내는 게 아니라, 화합의 도구와 매개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갈등을 최소화하면서요.

그래서 2005년 남북IT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일할 당시, 북측과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부에 남한 것도 북한 것도 아닌 ‘제3의 선택 표준자판’을 만들어야 된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2005년부터 개발에 착수했고, 2006년 북측과 합의해서 10년에 걸쳐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한겨레통일표준글자판 샘플

한겨레통일표준글자판 샘플

Q. 통일자판의 특징과 개발 시 중점을 둔 부분은?

 A.  자판의 배열입니다. 보통 자판 배열은 체계를 가지고 구성됩니다. 자음과 모음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자주 쓰이는 자음과 모음을 안쪽으로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바깥쪽으로 배치합니다. 현재 남북은 사용하는 어휘가 다릅니다. 전자 용어로 예를 들면 남한에서 ‘아웃풋’, ‘인풋’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를 북한에서는 ‘입구’, ‘출구’라고 합니다. 자연히 자판을 칠 때 사용하는 자음, 모음의 빈도가 다르죠. 그래서 남한어, 북한어 사용 빈도율에 근거해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 왼쪽은 자음 쪽으로 배치해 북한의 빈도율을 따르고, 오른쪽은 모음 쪽으로 남한의 것을 따랐습니다. 다른 특징은 통일자판의 표준은 2벌식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 정의 글자판’이라고 해서 사용자의 성향에 따라 3벌식까지 가능하도록 개발했죠. 그래서 자판의 배열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많이 쓰는 글자를 취향에 맞게 글자판의 버튼 글쇠를 자유롭게 배열하여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Q. 통일자판을 개발하면서 애로사항이나 힘들었던 점은?

A.  어려움이 있었죠. 통일자판 명칭 문제로 2년 동안 국내 신문사와 소송이 있었습니다. 준비기간까지는 3년인데요.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결국 승소하고 2016년 기술특허등록, 2017년 5월 상표등록까지 마쳐서 특허를 받았지만 그간 매우 힘들었습니다. 우리 통일자판의 공식 명칭이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입니다. 남북이 한민족이고 한겨레잖아요. 그래서 ‘한겨레’라는 단어를 넣어서 상표등록을 하려니까 안 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신문사가 컴퓨터 판매업, 컴퓨터 유통업 분야에서 이미 ‘한겨레’라는 용어로 상표등록을 마쳤더라고요. 그런데 또 특허법에 보면 특허가 났더라도 그 분야에서 3년 동안 사업을 하지 않으면 무효거든요. 그래서 제가 소를 제기했고, 승소해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었어요. 용어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지금은 OS(운영체제) 개발까지 마치게 됐죠.

지난 2002년 8월 중국 베이징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개최된 남북IT실무위원회에 조석환 회장이 참석했다.

지난 2002년 8월 중국 베이징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개최된 남북IT실무위원회에 조석환 회장이 참석한모습

Q. 통일자판 개발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통일 분야에서 남북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A.  서로 신뢰해야 됩니다. ​남북 간에 해당 사업에 대해서 ​신뢰를 해야 하고, 서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잖아요. 신뢰를 하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이 북한에 대해 한 가지 꼭 알아둬야 하는 게 북한 사람들 일 정말 잘합니다. 각 분야의 기본기가 굉장히 잘 잡혀있는데, 이건 남한이 배워야 할 점이죠. 자칫 언론보도만 보고 ‘북한은 열악하고 남한이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배우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존중의 자세가 나오게 되죠.

그리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통일 사업은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처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던지 하면 더 이상 일을 추진할 수가 없는 거죠. 또 각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도 사업 진행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렇게 시대적 또는 상황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인내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아직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을 만날 때도 통일부에 반드시 신고해야 하고, 법대로 사업 절차를 밟아가는 게 중요하겠죠.

Q. 구상하고 있는 다른 사업은?

A. 우선 통일자판의 연장선으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 통일문서 실무자격 시험을 만들어서 시행할 예정입니다. 지금 민간자격증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허가를 받은 상태이고 구체화 단계에 있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시행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격증 시험 교재도 공용으로 만들면 좋겠죠. 그리고 제 전문 분야를 살려서 ‘통일IT사전’을 집필해 볼 생각입니다. 통일자판 보급도 활성화 할 예정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KT에서 ‘통일자판’ 키보드를 채택해서 만들고, 또 도네이션 형식으로 북측에도 확산시키면 보급률이 높아질 수 있겠죠. 통일자판을 만드는 일까지는 저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이 같이 발전시켜야 하고, 기업과 민간 차원의 관심도 필요합니다. 민간에서는 현재 스마트폰용 자판으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치하고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통일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되겠죠.

Q. 통일자판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면 좋을지?

A. 평화적 남북 통일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합니다. 통일은 작은 것부터 이뤄가야 합니다. 통일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통일 이후의 삶의 현장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입니다. 이제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삶의 텃밭을 국민 모두가 작은 것에서부터 일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통일자판이 그런 디딤돌이 되길 바라면서 만들었어요. 각자 전문성을 살려서 통일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통일에 참여하고 기여하게 되는 것이겠죠. 사회 구성원들이 놓은 이런 디딤돌이 모여서 통일로 가는 다리로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리처럼 남과 북의 마음도 70년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연결되었으면 좋겠고요. 제 소원이기도 하지만 남북이 함께 금강산에서 만나 마음껏 운동 경기를 할 수 있는 그러한 통일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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