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월 3일

기획 |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 … 언제든 재발 가능한 취약 상태 2018년 1월호

print

기획 | 현장에서 본 북한, 대북제재 속 북한주민의 삶은?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 … 언제든 재발 가능한 취약 상태

토마스 피슬러(Thomas Fisler) / 전 스위스개발협력청 평양사무소장

지난 2017년 1월 3일 평양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연합

지난 2017년 1월 3일 평양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연합

현재 북한의 상당수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200만 명에 달하는 모자(母子)들이 기초적인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5세 이하 어린이들의 30%는 발육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산부 가운데 약 1/3에 해당하는 수만 충분한 식량 확보가 가능한 상황이다. 연간 곡물 부족분은 15~20%에 달한다. 만성적인 가난과 식량 부족은 대규모 영양실조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깨끗한 식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취약한 위생 환경 역시 많은 질병을 야기하며 이는 유아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35만 명이 넘는 임산부들이 건강관리 서비스의 부재로 조산 합병증처럼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 주민, 식량 부족분 상당량 비공식 거래로 충당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대기근 이후 북한이 농업 생산성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식량은 수요에 비해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현재 북한이 가동하고 있는 산업을 지속하기 위한 에너지 자원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위스개발협력청 평양사무소장으로 근무하며 현장에서 본 북한은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취약한 환경이었다.

현재 북한 정권이 진행하고 있는 5개년 계획은 공식적으로 농업 생산과 에너지 공급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주민들은 배급제에 따라 식량을 공급 받고 있으나 상당량의 부족분은 비공식 거래나 협동농장 인근의 소규모 농장과 가정용 텃밭, 심지어 들판과 산림에서의 채집을 통해 획득하고 있다. 농촌 지역 주민들은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도시 지역 주민들은 환경 측면에서 배급제에 보다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북한은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연쇄적으로 실시하며 주변국들과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고 유엔을 중심으로 이어진 일련의 대북제재로 곤란을 겪고 있다. 그간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경제 및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실제 무역이나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일정 부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 삶의 변화와 어떻게 결부되어 나타날지에 대한 관심과 판단이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활동으로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스위스개발협력청(SDC) 평양사무소는 지난 1995년부터 북한에서 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경사지관리(SLM), 재난위험감소(DRR)와 함께 ‘WASH(물과 위생)’ 그리고 세계식량계획(WFP)에 분유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북한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임농복합경영을 전수하고 지역 시장과 연결을 활성화해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간의 평양사무소 사업 대상 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과거보다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취약한 위생시설을 개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백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충분한 영양소를 가진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인도주의 사업 환경은 분명 특수한 조건 아래 진행되는 과정이다. 자연재해 등 계속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강력한 국가의 권위로 인한 부작용 등이 존재한다. 따라서 SDC는 대북 인도주의 지원의 양상과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숙고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재난위험감소가 주요 분야로 대두되었다. 다양한 지역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사회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식량안보 및 위생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결과적으로 통합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지역 사회 맞춤형 식량안보와 자연재해 관리 병행해야

특히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측면에서 식량생산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지역 사회라는 단위는 SDC 프로그램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한 주요 거점의 역할을 담당하며 여러 데이터를 통해 성과를 입증했다. 북한 지역 사회를 단위로 인도주의 사업을 적용할 때에는 반드시 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식량생산의 효율성을 높일 가능성과 함께 홍수 및 가뭄 등 자연재해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즉 ‘기회와 위협’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소위 ‘거점화된 지역 사회’를 바탕으로 하여 보다 광범위한 사회 단위로 연계되는 확장성을 견인해 나감과 동시에 자연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도주의 접근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북한 주민들이 직접적인 외부의 위험 요소들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회복력은 ‘안과 밖’에서 구조적으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내부적 차원으로 SDC의 ‘인간 지속성’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와 개인이 각자 고유의 힘으로 직면하고 있는 위험 요소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성을 신장시킨다. 외부적 차원의 ‘생계 자원’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로 하여금 자연 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통해 재난 위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는 이를 이룩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며 이 시기에 주민들이 인내하며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보호가 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팎의 여러 위기에도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에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