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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체제, 남북 차원 종전선언하고 다자안보 논의해야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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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남북정상회담 초읽기 …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평화체제, 남북 차원 종전선언하고 다자안보 논의해야

차문석 /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6일(현지시간) 독일 옛 베를린 시청 베어홀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및 통일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6일(현지시간) 독일 옛 베를린 시청 베어홀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및 통일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는 전쟁의 공식적 종료를 뜻하는 평화협정 없이 오로지 정전협정에 의존해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해 왔다. 지구상에서 전쟁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최근의 양상은 이를 더욱 암울하게 증명했다. ‘초불확실성’과 ‘거대한 폭풍’이 지배했던 2017년, 한반도는 제6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축으로, 이에 대한 대북 참수작전과 정밀타격 등 군사옵션의 실행 가능성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전쟁설과 위기설이 무섭게 뒤덮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갑작스레 한반도에는 대화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 5월의 한·미정상회담과 한·미·일정상회담, 그리고 5월 말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계획되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피어오른 대화 분위기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높은 기대와 열망을 또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정전협정체제 아래 있다는 한반도는 사실상 정전협정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한 정전체제 자체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전쟁 당사자들 상호 간에 외교관계가 회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6년에, 한국과 중국은 1992년에 국교를 수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체제라는 것이 특별히 필요한지, 이제 미국과 북한이 국교 정상화를, 남북한이 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면 그것이 사실상 평화체제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재 한반도에는 정전체제 지탱할 남북 간 합의가 없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그 생명이 소진되었다. NLL을 둘러싼 남북의 군사적 충돌, 남북한 무력 증강,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의 작동 중지, 북한의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등은 정전체제의 소진 위에서 나온 것들이다. 북한은 군정위 본회담 참석 거부(1991), 군정위 북한 대표단 철수(1994), ‘남북기본합의서’ 무효화(2009), ‘정전협정’ 백지화(2013)를 선언했다. 또한 남한은 5·24조치(2010)와 개성공단 중단조치(2016)를 내렸다. 한반도에서는 전쟁과 적대행위의 중지를 규정한 정전체제나마 지탱시킬 수 있는 남북한 간 합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결코 새롭지 않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1954년 제네바 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담에서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주요 의제였다. 회담은 실패했으나 이 회담의 쟁점들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중요한 쟁점이 된다. 남북 평화협정 문제, 한반도 평화의 집단보장 문제 등이 그것이었다. 북한은 1950~1960년대까지 미군철수와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의 선후 순서가 바뀌기는 하지만 일관되게 평화체제의 주체를 남북한으로 간주했다.

북한이 남북 간 평화체제 체결에서 북·미 평화체제 체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1973~1974년 무렵이다. 1973년 1월, 미국과 베트남 간의 ‘파리협정’이 체결되어 베트남에서 미군철수가 시작되자 이때부터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1973년 12월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고, 1974년 대미 서한(‘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편지’)을 채택했다. 북·미 상호불가침 조약, 연합사 해체 및 모든 외국군 철수 등을 주장했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권고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75년 제30차 유엔 총회에서 결의 제3390호를 채택, 한반도 평화에서 중요한 의제를 제기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주한 연합군 통합사령부의 해체가 그것이다.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도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남·북·미·중의 4자회담과 교차승인을 제안했다. 당시 북한은 이를 거부했는데 분단의 영속화로 간주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평화협정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평화협정 체결을 우선시한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그 결과로 주한미군 철수가 당연시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 남한은 남북한 불가침 협정의 체결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제도화한 이후에 주변 4대국으로부터 국제적인 보장을 받는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평화체제 논의에서 또 한 번의 색다른 전개과정이 발생했다.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권의 변동을 목도하고 남북한 공존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대남 유화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1988년 11월 북한은 ‘평화보장 4원칙’과 ‘포괄적 긴장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남한에는 노태우 정부가 등장하였고, 1988년에 7·7선언을 통해 남북동포의 상호교류, 남북교역 문호개방, 교차승인 등을 제시했다.

탈냉전 이후 평화체제 논의는 질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소련과 동유럽의 체제전환과 동시에 북한의 고립과 체제위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평화체제 논의에서 체제유지와 생존을 일차적으로 고려했다. 당시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가장 획기적인 문서는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다. 기본합의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성을 위한 거의 모든 사항을 망라하는 합의였다.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것은 남북한 불가침 선언을 먼저 선택한 후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수순으로 기존 전략을 수정했다는 의미다.

북·미 간에 북핵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던 1993년 6월 북한과 미국은 ‘북·미 뉴욕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 내용은 핵무기 포함 무력 불사용,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지지였다. 이 또한 북한의 NPT 탈퇴로 실패했다. 이 직후 1994년 4월 북한은 ‘새로운 평화보장 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제의했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북·미 평화협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되었다. 북·미는 북·미관계 정상화 추구, 북한의 안전보장,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 남북대화 진전 등에 합의했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쌍방 연락사무소 개설), 북·미 외교관계 수립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이른바 북·미 평화협정이 실험된 것이다. 하지만 역시 1998년에 이행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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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2000년대 들어 질적으로 도약

2000년대에 들어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도약했다.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북·미는 적대관계 청산을 목표로 한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계로 전환,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자’는 제안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과 북·미정상회담도 약속했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으로 무효화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6자회담을 통해 질적으로 변화했다. 2005년의 제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한반도 평화체제(peace regime)에 관한 구상이 명문화되기 시작했다. ‘9·19공동성명’은 모든 관련국들이 한반도 문제 해법의 정석으로 인정했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별도의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좌초되었다. 2007년 제5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합의’가 채택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하여 보다 진화된 양상이 나타났다.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하여 협상하고,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위한 실무그룹을 설치할 것이 제안되었다. 여기서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언급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협정은 동북아 안보협력체계와 동시에 추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007년 10월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다분히 획기적인 안이 제기되었다. 정상회담에서는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기로 했으며 3자 혹은 4자 정상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종전선언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환이었다. 이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종전선언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과 한반도 평화협정이 단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협정의 새로운 방향을 의미했다.

올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동북아 정세의 가변성은 극대화되었다. 3월 25~28일 북·중정상회담, 3월 29일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고, 4월은 남북정상회담, 5월에는 한·미, 한·미·일, 한·중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한반도 질서가 평화체제로 급전환할 수 있는 계기들이 도처에서 생산되고 있다. 기회의 한반도가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가 최우선 목표’라는 기조 속에서 평화체제 수립을 인식하고 있다. ‘항구적인 평화체제’는 남북 간 합의사항을 제도화하고 종전 및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서 수립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레짐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한반도 평화의 항구적 보장과 구축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다.

남북 간 기본협정 체결 방향으로부터 시작해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한 간에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남북 평화협정보다는 북·미 평화협정에 치중하고 있다. 북한에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남북기본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은 남북한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과 미국·일본이 관계개선을 할 수 있도록 매개해야 한다. 주변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2005년의 9·19공동성명과 2007년의 2·13합의문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양자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 바가 있다. 지금까지 이를 실행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은 거의 없었다. 이번 기회에 주변국들이 이에 대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에서 가능한 남북한 차원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이후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는데 유리하다. 남북한의 적극적 평화 의지를 표출하고 이로 인해 패싱(passing) 우려를 가질 주변국들(미국과 중국)의 동참 의지를 제고할 것이다. 남북한의 한반도 종전선언은 정전체제를 종전체제로 전환시킴으로써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실현을 위한 과도적 스테이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의제 속에 동북아 차원의 다자간 안보협력 문제도 큰 틀에서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한 전제가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으로 가능해지지만, 이 평화협정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름 아닌 국제적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동북아 차원의 다자간 안보협력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보장하며 이를 통해 동북아 안보협력을 추동하는 경로를 설정한 바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올해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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