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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 남북 스포츠교류, 분단을 넘어 평화를 새긴다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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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포츠교류

분단을 넘어 평화를 새긴다

김미숙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책임연구위원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X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북단일팀과 카자흐스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X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북단일팀과 카자흐스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

4·27 ‘판문점 선언’은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기틀을 확립하며, 교류·협력 및 왕래·접촉을 위해 체육·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적극적인 협력과 교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유난히 남북 스포츠교류는 스포츠 경기만큼이나 다이나믹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팔렘방에 여자농구, 카누용선, 조정 3개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이 구성되어 우승을 향한 질주가 한창이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남북 스포츠교류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과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의 태권도 합동 시범공연, 통일농구대회 개최 등 체육계가 선두적으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스포츠교류를 통해 남북관계에 순풍이 지속되기를 고대해본다.

남북, 체육회담과 단일팀 구성 및 교환경기 등으로 스포츠교류

남북 스포츠교류를 위한 노력들은 재원 지원 및 안정적 시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그리고 실질적인 조치로써 체육회담, 단일팀 구성, 공동입장, 국내외 대회참가, 교환경기 등으로 반영되었다.

우선 제도적 기반으로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법률 제2조 4항에서 “협력사업이란 남한과 북한의 주민(법인 및 단체 포함)이 공동으로 하는 문화, 관광, 보건의료, 체육, 학술, 경제 등에 관한 모든 활동을 말한다”고 하였다. 체육과 관련한 지원으로는 “단일팀 출전 및 공동개최, 학술연구단체 및 청소년단체의 육성과 체육진흥”이 있다. 그리고 「남북협력기금법」에 의거하여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 지원이 가능하여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및 동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사업에 각각 2억5700만원, 21억2,600만원이 지원되었다.

이어 실질적 조치로써 체육회담, 단일팀 구성, 공동입장, 국내외 대회참가, 교환경기 등이 있다. “1964년 도쿄하계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 간 첫 번째 체육회담이 1963년 1월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1991년까지 10여 차례 간헐적으로 개최되었다. 체육회담에 따른 실행들(단일팀, 국내외 대회참가, 교환경기)은 1990년부터 2000년대까지 비정기적이나 지속적으로 보여진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시작으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지바현)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리스본)에 단일팀 구성(1991), 제1차 금강산 자동차질주경주대회과 제81회 부산 전국체전 금강산 성화채화(2000), 남북태권도교류 협의 및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참관(2003), 6·15 공동선언 실천 남북강원도겨울철체육경기(2006), 아시아시니어레슬링선수권대회(2008),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2013), 남북노동자 축구대회(2015)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대별로 구분해서 보면, 과거 일련의 남북한 스포츠교류는 1960~1980년대까지는 체육회담 중심으로 이뤄졌다. 1990년대에는 몇몇 종목을 중심으로 단일팀을 구성하고 대회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이어 2000년대 들어 국제대회 공동입장, 참가 종목(동계종목, 태권도, 레슬링, 유도)과 대상별 확대(청소년, 시범단, 응원단) 및 이벤트(축전, 교류, 참관, 친선)의 다양화가 이뤄졌다. 2010년대 이후에는 남북한 관계 경색으로 인한 스포츠교류의 침체가 이어졌다.

‘판문점 선언’ 이후 정부 및 유관기관은 긴밀한 소통과 실현 가능한 스포츠교류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한때 교류의 단절로 인한 침체기를 겪었으나 동아시안컵축구대회(2013), 인천아시안경기대회(2014), 아이스하키여자선수권대회 및 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2017), 평창동계올림픽대회(2018) 및 다수 대회들(제52회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이 개최될 예정이어서 남과 북 모두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게다가 학계를 중심으로 ‘남북 스포츠(체육)교류의 의미와 현황, 과제, 전망, 활성화 방안’ 등 고민거리들에 대한 대안 도출을 위해 학술세미나가 활발히 개최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규모와 질적 측면에서 큰 성장했지만 과제도 남아

확실한 것은 과거와는 달리 최근 남북 스포츠교류는 무엇보다도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실행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고, 1회성 대회보다는 ‘기관 대 기관’, ‘도시 대 도시’ 등의 모습으로 사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환경과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 역시 떨칠 수가 없다. 관 주도형의 톱-다운 방식, 단일팀을 위한 불공정한 선수 선발 및 구성, 선수 중심(대회, 훈련)의 지협적 교류, 대회 도중 단일팀 선언 등 스포츠의 가치 훼손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내외부의 비판과 충고를 적극 받아들여 앞으로 남북 간 스포츠교류의 바람직한 청사진을 설계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남북관계, 특히 스포츠교류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과거 사례가 바로 동독과 서독에서 진행되었던 경험이다.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독일 태생)는 이미 동서독의 스포츠교류를 경험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국제체육계의 수장인 그에게 우리의 기대가 높은 것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동서독 통일을 위한 걸음은 할슈타인 원칙 폐기(1969),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1970),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체결(1970), 폴란드와 불가침조약 체결(1970), 4대 점령국과의 베를린 긴장완화 및 문제 해결에 관한 협정 체결(1971)에 이어 우호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모든 폭력을 배제하며 협력지원과 군비축소, 자주성과 독립성 인정, 국경지역 통로 개방을 골자로 한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1972), 그리고 유엔 동시 가입(1973) 등이다. 이중 동서독 기본조약에 “경제·과학·기술·교통·우정·보건·문화·스포츠·환경보호 및 그 밖의 제 분야에 대한 협정을 체결한다”고 하여 스포츠교류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만들었다.

1952년 베를린에서 ‘스포츠 정치적 평화조약’(일명 1952 베를린조약)이 체결되었는데 대회 비용 부담을 위한 “70:30원칙”, 단일팀 참가를 위한 합동훈련 방식 등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교류를 위한 정부의 지원금 결정과 1957년을 독일 스포츠교류의 해로 지정하게 되었고, 1958년 396회, 1959년 624회, 1960년 683회, 1961년 783회로 매해 스포츠교류 횟수가 증가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한때 베를린장벽으로 인해 교류가 잠시 단절된 때도 있었으나 1972년 동서독 간 관계 정상화와 ‘스포츠관계의 규정에 관한 의정서’, ‘내독 스포츠협상을 위한 공동성명’ 등을 통해 동서독 간 스포츠교류는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650만마르크를 동독의 스포츠클럽 및 단체를 위해 지원하는 등 통일 후에도 지원을 지속하였다.

동서독 스포츠교류의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로 축약할 수 있는데, 바로 체육단체를 통한 소통 유지, 지원 규정 제정과 조직 개편, 지역 기반으로 한 연계체제 구축, 청소년 우선 선정, 서독의 배려와 인내다. 이렇게 독일 통일과정에서 스포츠교류는 상호 이질감을 감소시키며 공감대 형성과 긴장 완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일관적 정책기조와 배려 동서독 스포츠교류 시사점은?

체육백서(2016)에 의하면 스포츠교류는 역사성, 대중성, 동질성 그리고 중재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다른 분야보다 활용성과 그 의미가 크다고 했다. 미·중 간 핑퐁외교(1972), 서울하계올림픽경기대회(1988)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서독은 변화무쌍한 정치적 기류 속에서도 스포츠를 통한 관계개선의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 재정적 지원, 양보와 배려, 일관성 있는 정책적 기조를 유지하며 동서독 관계 변화를 유도하였다. 그 중에서도 ‘클럽 대 클럽’, ‘협회 대 협회’, ‘지역 대 지역’ 간 소통과 연계 및 연합은 통일독일을 이루기 위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세계의 이슈가 된 남북한 관계에 있어 스포츠교류는 핫이슈이자 그 필요성을 모두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아래로부터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동서독 스포츠교류의 시사점을 잘 반영하여 우리 남북한 스포츠교류 또한 외부의 영향 없이 일관성 있는 스포츠의 순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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