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0월 2일

통일 커튼콜 | 이산, 만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대하여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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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커튼콜 | 연극 <홍시>

이산, 만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대하여

조두림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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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모든 상황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2011년 2월 22일 오후 12시 51분이 그랬다. 당시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어학연수 중에 있었던 때이자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규모 6.3의 강진이 들이닥쳤을 때였다. 체감 상 약 2분여 간의 분노의(?) 흔들림이 휩쓸고 간 뒤, 머물고 있었던 도서관의 유리창은 온통 다 깨지고 컴퓨터와 책들은 사방에 나뒹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안을 위해 실제 군사용 탱크들이 거리를 오갔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울러 눈앞에서 1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담은 성당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 자연현상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극심한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임시 난민이 되었고, 진앙지 부근에 위치해 공식적으로 접근이 금지된 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한순간’이 ‘자연’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여기 ‘인간’에 의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지난 8월 29일~9월 2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한국전쟁의 분단으로 한순간 집과 가족을 잃은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룬 연극 <홍시>가 공연되었다. <홍시>는 극단 목수가 제작한 작품으로 지난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출범해 올해로 3회를 맞은 연극인들의 축제 ‘권리장전’의 2018년 여덟 번째 참가작이다.

오랜 기다림, 찾아온 재회의 기회, 복잡한 속내

20181002_133024따르릉.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정집에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하지만 서로 부대끼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이 집에 걸려온 전화로 ‘한순간’ 모든 상황이 바뀐다. 1대 가장 ‘춘길’은 60여 년 전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남한으로 피난 온 실향민이다. 하지만 ‘Life goes on!’,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다행히 남한에서 사랑하는 아내 ‘순임’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손자·손녀까지 보면서 온전히 정착했다.

전화의 정체는 ‘이산가족찾기본부’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춘길에게 평생의 염원이었던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의 축하가 쏟아졌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한 사람이 있다. 아내 순임은 춘길이 북에 두고 온 가족, ‘전 부인’을 만나는 것이 탐탁지 않다. 심지어 전 부인에게 주고 싶은 반지, 옷, 달러 등의 선물을 위해 아들 내외에 1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속상하다.20181002_132230

하지만 순임은 여장부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 주겠느냐’며 자신의 결혼 패물을 팔아 춘길의 소원을 들어준다. 양손 무겁게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북으로 떠난 춘길은 이산가족상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춘길이 평생의 한(恨)을 풀었으니 이제 모든 것은 상봉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그러나 분단이 그치지 않는 이상 엔딩은 없다. 이제 마음 편하게 살 줄 알았던 춘길은 이산상봉 이후 오히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은 춘길 만이 아니었다. 보름째 식음을 전폐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는 춘길을 지켜보던 아내 순임은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평생 처음으로 가출하기에 이르는데….

분단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20181002_133345분단은 그 사건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한 세월을 발목 잡는다. 춘길 3대(代)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전쟁의 상흔과 국방의 의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또한 춘길처럼 이산가족상봉 이후 우울증, 가족 간 문제 등 여러 가지 갈등을 양산하기도 한다.

개인이 겪는 고통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때론 호소력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기에 이산가족 문제는 주요의제에서 소외되어온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연극 <홍시>의 재회한 옛 부부가 한순간 그어진 분단선으로 생이별을 하고, 그 한(恨)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10번의 눈물과 한 번의 말로 의지를 다해 이어가는 대화는 제3자로 하여금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산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며 통일의 이유를 곱씹어 보게 한다.

2011년 내가 겪은 지진은 인간이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분단은 인간의 결정으로 발발한 전쟁에서 발생한 것이고, 여전히 인간에 의해 끝낼 수 있는 종류의 문제다. 우리는 ‘평화’에 관해서는 무력하지 않을 수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까지 마친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 흐르는 것이 분단의 상흔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애통의 눈물이 아닌 ‘평화의 물결’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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