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1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저희가 뭐라고 수박을 보내 주십니까!” 2014년 1월호

print
윗동네 리얼 스토리 35 | “저희가 뭐라고 수박을 보내 주십니까!”

북한에서는 개인 상호 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없다. 의리를 중시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일 자체가 수령우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군대에서 선물은 오로지 수령이 인민들에게 내려주는 것으로 고착됐다.

어느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느 중앙급 기관에 수박 4개를 선물로 보내 왔다. 수박은 크고 보기도 좋았다. 그런데 종업원은 스물 네 명도 아닌 240명. 어느 부서에 따로 보낸다는 것도 없어 그 처리가 참으로 난감했다. 수박은 달랑 4개 뿐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기관당위원회에서는 논의 끝에 종업원 전원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기로 했다. 장군님 선물이니 달리 처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박 4개를 240명이 나눠먹기?

결국 수박 네 개를 240등분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한 사람한테 탁구공만큼씩 돌아가게 되었다. 그나마 운이 좋은 사람은 수박 속살이 돌아갔지만 운이 나쁜 사람한테는 수박 겉살 부위, 즉 하얀 부분이 돌아갔다. 그걸 비닐로 포장한 다음 곧 선물증정을 위한 종업원 회의를 열었다.

탁구공만한 수박이건 뭐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보내준 선물이니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충성을 다짐하는 결의모임을 해야 했던 것이다. 종업원 총회가 시작되고 먼저 장군님의 보내준 선물, 탁구공만한 수박을 한 명씩 호명하여 나눠준다. 그 다음 보고가 있고 급이 높은 간부들부터 감격의 토론을 하는데, 제일 처음 어느 부위원장이 나가 첫 토론을 한다.

“해방 전 자강도 낭림군의 이름 없는 화전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하고 시작한 토론이 연속되어 이어진다. “강변의 조약돌같이 천대 받고 멸시 받던 저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사랑의 한품에…” 누구의 토론을 들어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원본 그대로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까지 토론문은 작성된 대로 이미 머릿속에 암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 허연 사람이 수박조각을 놓고 무슨 사랑이니 은혜니 보답이니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누가 봐도 코믹한 일이지만 누구하나 웃는 사람은 없었다. 장내엔 장군님의 선물을 받았다는 숭엄한 분위기가 흐를 뿐이다.

토론 중간에 제일 앞 우측에 앉았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구호를 외친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끝없이 충실한 근위대 결사대가 되자.” 회의 전에 당위원회에서 준비시켜 놓은 사람들이다. 전 종업원이 일시에 따라 일어서 팔을 밖에서 안으로 굽혔다 폈다 하며 구호를 받아 외친다. “근위대 결사대! 근위대 결사대! 근위대 결사대!” 구호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몸과 마음 다 바쳐 충성으로 받들자. … 받들자! 받들자! 받들자!”

헤어져 나오면서 모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누군가 감격에 겨워 헉헉 흐느끼며 토론을 이어간다. “저희 같은 것들이 뭐라고 이렇듯 크나 큰 사랑의 수박까지 보내 주시는 것입니까. 아,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저희들은 정녕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크나큰 은정, 뜨거운 사랑에 대를 이어 충성 다하겠습니다…” 이어 앞에서 발바리(?)들이 일어서서 구호를 선창하고 사람들은 따라 부른다. 마침내 김정일에게 올리는 맹세문이 채택되고 회의가 끝난다. 하지만 끝나는 것도 그냥 끝나는 법이 없다. “우리에게 이 행복을 안겨주시려 한 평생을 바치시는 우리 수령님.” 노래에 이어 “자애로운 사랑의 한 품에 안겨 행복에로 이끄시는 지도자 동지.” 노래를 합창한다.

두 시간에 걸친 긴 회의에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마침내 끝나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안고 노래를 부른다. 헤어져 나오면서 모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필자도 그와 같은 회의에 여러 번 참가해 봤지만 공허한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장난도 아니고, 그러나 그런 감정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무조건 감격해야 했다. 감격은 눈물로 표시된다. 받은 건 수박 한 조각이지만 흘리는 눈물은 한 동이 쯤 돼야 그게 진정한 ‘충신’의 모습이었다.

이지명 / 계간(북녘마을) 편집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