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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닭이 된 할머니?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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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4 | 닭이 된 할머니?

TB_201401_46 문명수준은 화장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화장실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아직 외국에 많이 가보지 못했지만 화장실이 한국보다 더 훌륭한 나라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필자가 본 한국의 화장실은 화장실이라기보다 어떤 문화공간 같은 느낌이 든다.

남한에 처음 왔을 때 화장실이 너무 잘 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화장실에 들어가면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화장실에서 음악이 나오다니,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화장실을 살펴보면 그것을 짓고 꾸미는데 많은 돈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웬만한 살림집보다 더 좋아 보일 정도다.

“화장실에서 음악이 나오다니!”

남한에 오기 전 중국, 미얀마, 태국을 거치며 그 나라들의 화장실을 이용해 보았는데 한국에 비하면 많이 낙후했다. 들리는 화장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했다. 거기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는 것이었다. 세상에, 화장실에서 돈을 받다니!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라더니 그 말이 실감났다.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돈을 내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걸 보고 단박에 확신했다. 중국은 무늬만 사회주의지 이미 자본주의 사회라고. 그래서 남한이야 공개적인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을 받는 화장실이 더 많을 거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정작 남한에 온 후 그런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화장실에서 돈을 받다니. 아무리 자본주의니 뭐니 해도 우리 민족 정서상 화장실에서까지 돈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지.’ 이렇게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다.

북한에도 좋은 화장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고위층 간부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나 수령우상화선전시설, 대형극장 등 특정 대상의 화장실은 괜찮았다. 그렇지만 편안한 자세로 앉는 좌변기보다 쪼그려 앉아 볼일 보는 변기를 설치한 곳이 많다. 아직 북한주민들 대부분은 걸상처럼 앉는 좌변기가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본적은 없을 정도다.

언젠가 평양에 사는 이모네 집에 지방에 살던 필자의 외할머니가 찾아갔다고 했다. 고령의 나이에 평양에 가긴 처음이었는데 이모가 사는 집은 아주 좋았다. 이모부가 중앙당 요직에 있어 중앙당 부장, 부부장급들만 사는 고급아파트에 살았다. 지방에서 재래식 화장실만 쓰고 살던 외할머니는 이모네 집을 보고 너무 황홀하여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중앙당 간부 장모가 길 위에 변을 … 웬 망신인가!”

그러다 끝내 사고가 생겼다. 할머니가 실종된 것이다. 사연은 이렇게 된 것이다.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간 할머니는 당황스러웠다. 말이 화장실이지 신문이며 잡지가 가득하고 온갖 이름 모를 화장품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것이 너무 생소했고, 더구나 좌변기는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이모에게 이걸 어떻게 쓰는가 하고 물었다. 이모가 알려주는 대로 좌변기에 앉았다. 그러나 꼭 방안에다 변을 보는 것 같아 변이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도 난생 처음 걸상에 앉은 자세로 변을 보자니 도무지 힘이 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좌변기 위에 발을 올려 딛고 횃대에 올라앉은 닭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여전히 변이 나가지 않았다. 끝내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볼일을 못 봤으니 야단났다. 할머니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밖으로 슬그머니 나와 버렸다. 밖에 나가 재래식 화장실을 찾아 무작정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겨우 인적 드문 골목을 찾은 할머니는 머리를 푹 숙이고 무작정 땅바닥에 변을 보고야 말았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촌 늙은이가 그 복잡한 평양시 중심부를 이리저리 돌다보니 그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길이 저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았다. 한편 밖으로 나간 할머니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앉자 이모가 찾아 나섰다. 그러나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안서(경찰)에서 할머니를 모셔가라는 전화가 걸려 와서야 찾을 수 있었다. 이모는 이모부한테 할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중앙당 간부의 장모가 길바닥에 변을 봤다고 소문이 나면 무슨 망신인가 하고 노발대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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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화장실이 낙후하기도 하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구에 비해 공중화장실이 적은 지역에선 아침시간에 화장실 곁에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화장실에 앉아 문이나 벽에 이상한 낙서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흥미 있는 것은 남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서울은 그나마 괜찮은데 지방에 가면 화장실에 변태적인 낙서를 한 것이 흔하게 눈에 뜨인다.

참고로 북한에선 ‘화장실’이란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위생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야외에 있는 것과 재래식 화장실들은 ‘위생실’이라고 하지 않고 ‘변소’ 또는 ‘공동변소’라고 한다. 그 외 ‘뒷간’, ‘작은집’, ‘안 보이는 곳’ 등의 은어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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