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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가 숨쉰다 | DMZ에서 가장 평화롭게 사는 고라니? 2014년 1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3 | 고라니
DMZ에서 가장 평화롭게 사는 고라니?

TS_201401_64 첫 서부 DMZ일원 생태조사를 할 때 조사를 마치고 한적한 숲길을 지나는데 올무에 걸린 듯한 짐승의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웨에엑~, 웨에엑~” 절규하듯 내는 소리음은 두려움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참 괴이한 파장이었다.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관찰한 결과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고라니였음을 알았다. 낮에 만난 고라니는 순진한 눈망울처럼 겁이 많아 쉽게 도망치는 초식동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기이한 소리를 내는지 아직도 잊지 못할 전율을 느낀다.

고라니는 흔히 노루와 비슷하여 생태체험 참가자들은 아직도 고라니를 노루, 혹은 사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라니는 사슴과에 속하는 동물로 보노루, 복작노루라고도 한다. 학명인 Hydropotes(물을 먹는 놈) inermis(무기를 가지지 않은)는 ‘물가에 사는 무기(뿔)를 가지지 않은 사슴’이란 뜻으로 공통적으로 물과 관련이 있으며, 이 동물이 처음으로 세계 학계에 소개된 것은 1870년 서양의 학자 Swinho가 중국의 양자강가에서 발견하고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고라니는 유난히 물가를 좋아한다. 헤엄을 잘 치며 보금자리도 물가 풀숲에 잘 튼다. DMZ에 있는 사천강, 사미천과 임진강, 역곡천 등지에서 헤엄치며 물속식물들을 먹는 평화스런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고라니를 물사슴(Water Deer)이라도 부르는데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고라니, 한반도·중국 일대만 서식하는 고대동물

노루는 고산·야산을 막론하고 삼림지대에 서식하며, 겨울이라도 양지보다는 음지를 택하여 서식한다. 반면 고라니는 초식성으로 갈대밭이나 무성한 관목림에 살며 건조한 곳을 좋아하고  채소, 거친 풀, 갈대 등을 먹는다. 고라니는 암수 모두 뿔이 없고, 노루는 암수 모두 송곳니가 없다. 고라니는 수컷만 송곳니가 있고, 노루는 수컷만 뿔이 있다. 수컷의 송곳니는 약 6㎝ 정도로 입 밖으로 나와 있으며, 번식기에 싸울 때 쓰인다. 영역 표시는 일반 야생동물이 소변이나 배설물을 이용하는 반면 고라니는 3개(눈 밑, 사타구니, 발바닥)의 분비샘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배설물을 이용하여 영역을 표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겨울(12월)에 교미하여 초여름에 출생한 새끼는 세로로 줄지어 흰 반점이 있으며 후반신으로 갈수록 더 많다. 새끼 때의 찬란한 점무늬는 노루에게도 있어 혼동이 된다. 고라니는 새끼를 낳아 놓고도 새끼와 함께 있지 않는다. 새끼를 한자리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나무그루터기 밑이나 그 사이, 아니면 논두렁 풀 숲 속에 감춰 놓고 자신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외적의 접근을 살피다가 안전한 틈을 타서 젖을 먹이고 또 떨어진다. 한 번은 논두렁에서 갓 새끼를 낳고 숨어있던 고라니를 본적이 있다. 다가가는 필자를 관찰하다가 너무 가깝게 접근한 것을 확인하고 고라니는 용수철처럼 뛰어서 도망쳤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되돌아와서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새끼를 감싸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다. 온몸은 두려움과 경련이 일어나고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지만, 새끼를 향하는 모성으로 공포를 견디는 고라니를 보며 마음이 한동안 복잡했다. 한참을 보다가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물으면서 그날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더 없는 평화공간이지만 두려움도 가득한 곳

현재 남한의 내륙지방에서 노루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대부분 고라니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사슴과 중 유일하게 뿔 대신 송곳니를 가졌고 유두가 4개인 고라니는 한마디로 진화가 덜 진행된 고대형(古代型) 동물이다. 고라니는 진화상 고대형 소형 사슴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양자강 남북 일대에 각각 하나의 아종(亞種)이 있다. 즉, 전 세계에서 한반도와 중국에만 사는 이 지역 고유종이다.

고라니는 적이 나타나면 감연히 일어서 주의를 자신에게로 이끌어가며 빠른 걸음으로 따돌린다. 그런데 1분 정도 전력질주 하다가 일단 멈추고 사방을 다시 살핀 다음 추적자가 없을 경우 다시 그 위치로 돌아오거나 왜 자신이 도망쳤는지를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먹이활동을 하는데 이때가 고라니에겐 가장 위험한 순간이자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10년째 서부민통선에서 생태조사를 한다. 그래서 난 늘 귀를 쫑긋하고 산다. 남북관계가 복잡해지거나 군 관련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막연한 두려움에 자기검열을 한다. DMZ. 나에게 더 없는 평화의 공간이지만 나를 억압하는 두려움이 가득한 공간. 없어져야 할 분명한 대상이면서, 여전히 굳건히 존재해야 하는 참으로 괴이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평화롭게 사는 고라니, 도망치다가 왜 도망가는지 그 이유를 잊고 또 일상에 몰입하는 고라니, 강변에서 사람 사는 곳이 좋아 두려움을 안고 숨어서 사는 고라니의 모습을 보자면, 참 나와 닮았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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