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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 거친 눈보라 뚫고 올라선 저 남자를 보라!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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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26 | 거친 눈보라 뚫고 올라선 저 남자를 보라!

〈난관을 뚫고〉, 우연일, 조선화, 1971년, 226x127cm

〈난관을 뚫고〉, 우연일, 조선화, 1971년, 226x127cm

발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아파트 단지 안을 조심조심 걷는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얼어붙었다. 간신히 들어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책을 뒤적이다 보니 마침 우연일의 작품이 우연히 눈에 꽂힌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작품 〈난관을 뚫고〉는 무너진 철탑의 일부를 복원하기 위해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철탑에 올라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북한 조선화의 특징이 잘 반영된 작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내 눈은 화면 중앙의 남자에게 먼저 가 닿는다. 가장 진한 색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이 남자는 주변의 흐리게 우려낸 색채와 비교되어 더욱 강렬하게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묘사되어 있다. 만져질 듯 입체적으로 그려진 이 남자의 오른팔, 왼팔을 지나 오른쪽 화면 끝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겨보면 올라 타 있는 판 연결부위의 회색 철근에 이른다. 치밀한 사실성에 ‘진짜 조선화 맞나?’ 싶어진다.

“감동적이야” vs “안쓰럽네” … 당신은 어느 쪽?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넓게 펼쳐도 우려낸 듯 그려진 배경에서 조선화의 풀어진 먹으로 인해 담백한 멋을 느껴볼 수 있다. 〈난관을 뚫고〉의 담백한 화면은 눈보라가 친다는 설정된 날씨를 배경으로 사실성을 획득하면서 흐려진 배경 안에 우뚝 서 있는 강건한 철탑의 위용과 만나게 된다.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도, 사실적인 모자와 얼굴을 지나 눈을 천천히 아래로 옮겨 바지로 내려오면 툭. 툭. 몇 번의 붓질로 그려진 평면적 화면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바지의 표현은 바로 오른쪽 옆에 그려져 있는 절제된 사실성의 철 부품들과 비교되면서 서로 다른 표현방식이 각각 두드러지게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철 물질의 차가운 대상성과 바람에 휘날리듯 흩어진 바지의 회화적 화면 모두 눈보라 치는 날씨라는 배경 설정 속에서 다시금 사실성을 획득한다. 작가가 얼마나 세심하게 화면 곳곳의 조형성과 표현적 효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지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눈보라 치는 날씨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저 남성에게 독자들은 어떤 감정이 이입될지 궁금하다. ‘위험해!’, ‘저런 날씨에 저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게 하다니, 안쓰럽네’, ‘저런 날씨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다니 감동적이야’, ‘안전장비도 별로 없이 저 위로 사람이 올라가게 만들다니, 위험한 나라’

이 작품을 보고 영웅을 연상할 수도 있고, 위험을 넘어 안쓰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우리가 서로 다르게 갖고 있는 정보와 연동될 수도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회의 작품을 바라볼 때 작동될 수도 있다. 때론 그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학적 무의식의 지점이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고 바라보는 사람에 의해 포착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는 주인공을 영웅적인 남자로 묘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저 남자를 다 영웅적으로 인식하게 될까? 우리 모두가 작가 우연일이 주인공을 영웅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각자 자신이 느끼는 느낌은 또 다를 수 있다. 감상자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량, 이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등이 우리의 해석을 지배하곤 한다. 온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존재할까?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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