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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꿈이 없는 아이들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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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15 | 꿈이 없는 아이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6월 8일 평양 기초식품공장 탁아소에서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6월 8일 평양 기초식품공장 탁아소에서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정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TV에서 연예인들의 학창시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스타들의 모교에 찾아가 그들의 옛 담임선생님들을 만나고 학적부를 보는 장면에서 깜짝 놀랐다. 자라면서 그들의 꿈이 변해가는 모습이 학적부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북한에서 교사로 일했던 나로서는 한 마디로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북한에서는 왜 이런 과정이 없었을까?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교육기관에서 당연히 장래희망을 물어보아야 하는데, 북한의 학적부에는 간단한 가족정보, 학년별 성적과 담임의 평가, 체력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가 전부다.

“저의 장래희망은 장사꾼, 운전수입니다”

나도 모르게 제일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라는 교육과 인성이라는 교양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주는 학교에서 꿈을 체크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체크가 아니라 그 반복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미래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해보는 계기를 만들며, 순간의 즉흥이나 공허한 환상보다 학습에 대한 혹은 자기의 능력과 소질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가지게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의욕이 생기고, 좋아하는 부문에 대한 열정과 창조적 상상을 가능하게 하여 우리 아이들을 미래의 주역으로 키워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 TV에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물어보는 장면을 많이 본 것 같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다양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느꼈다. 북한 TV에서도 아이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따금 물어본다. 그런데 북한 아이들의 대답은 단조롭고 틀에 박힌 하나의 선전문구와 유사하다. 하물며 학교에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에 대한 조사 작업이 전혀 없다. 물론 북한이라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꿈과 희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소박한 꿈, 아이들의 가능성이 무너지다

예전 소학교 1학년을 맡은 선생이 갓 입학한 꼬마들에게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장사꾼, 운전수가 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우니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돈을 잘 버는 직업에 맞춰져 있었다. 이 소문이 나자 온 시내가 떠들썩했다. 일부는 ‘참 똑똑한 아이들이다.’, ‘벌써 돈이 중요한 걸 안다.’는 반응이었고 일부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나갈 아이들의 꿈이 고작 장마당의 장사꾼이고, 운전수가 제일이라는 인식이 어린 아이들의 머릿속에 박혔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간부도 있었고 보안원(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간부가 잘 사니 간부가 되겠다고 한 것이고 보안원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니 어린 마음에도 보안원이 부러웠던 것이다. 문제는 과학자, 기술자를 꿈꾸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도시 아이들이 이랬으니 산간오지 아이들의 꿈은 오죽할까 싶었다.

부모도 역시 같다. 자식들에 대한 대다수 학부모들의 기대 역시 단순하다. “선생님, 어디가 밥만 굶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집 주제에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서울 갈 당나귀는 발뒤꿈치를 보면 안답니다.” 등의 대답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에는 나도 부모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나 부모의 꿈과 희망이 좌절되는 북한의 구조자체를 의심해보지 못했다. 학부모 구성이 나쁜 학교들에서는 대학 진학생이 고작 1~2명이고 나머지 학생들은 군대 아니면 탄광, 광산, 중요 건설장, 기업소들에 집단배치를 하니 피워보지도 못할 꿈을 가져선 뭘 하랴?

가르치던 제자들 중에는 정말 아까운 애들도 많았다. 경제적 여력만 어느 정도 있으면 큰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하고 유학까지 갈 수도 있는 아이들, 특별히 끼와 재능이 많아 그 분야로 발전하면 꼭 성공할 것 같은 아이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현실에서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언젠가 백두산답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한 부락에 가니 청년돌격대 본부가 있었다. 그런데 정문 선전판 앞에서 보기에도 여린 한 청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척척 그리는 청년을 보고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천재라고 입을 모았다. 다가가 물어보니 평안북도에서 온 만 19세의 파릇파릇한 청년이었다. 미술가가 되고 싶다던 그 청년은 평양미술대학이나 지방에 있는 사범대학 미술과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추천을 받지 못하고 청년돌격대에 배치 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자기는 그림 실력이 있어 본부 선전실에서 일하며 그림을 그리고 붓글을 쓴다는 것이다. 왠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이라면 어려운 가정들에 대한 정부와 사회 곳곳의 지원도 있고 대학들마다 외국대학들과의 교환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으며 여러 자선단체들을 통한 해외유학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북한의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국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꺾고 좌절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한국의 자유와 개인의 의무를 중시하는 북한의 강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의 소박한 꿈마저도 정말로 ‘소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차고 야무진 한국아이들, 꿈과 미래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글로벌하고 다소 엉뚱한 상상까지 하는 그 아이들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는다. 반면 소박한 꿈을 가진 북한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은 점차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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