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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북한에도 수행평가가 있을까?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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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16 | 북한에도 수행평가가 있을까?

지난해 8월 22일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학생들이 음악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지난해 8월 22일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학생들이 음악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북한에서 교사로 일해서 그런지 한국 교육에 호기심이 많다. 호기심이 많을수록 놀라움도 많았다. 한 과목에 한 가지 교과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에, 일부 과목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교복 디자인이 전국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도 놀랐다. 교육방법에 대해서도 늘 관심이 갔다.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교수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성적평가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등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 시험은 암송만 잘 하면 돼요”

어느 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통해 수행평가라는 말을 들었다. 수행평가가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갔지만, 아이의 설명을 듣고서야 ‘학생들이 과제, 실험 등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는 교수방법이구나.’라고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수행평가 혹은 깨우치는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북한은 1996년 새 학년도의 시작을 9월에서 4월로 바꿨다. 새 학년도 변경으로 우리 교육부문에 남아있던 러시아식 마지막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입식 교수방법이 이전 소련식 교육방법이므로 방법적인 면에서도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양의 한 박사가 직접 찾아와 강의도 해주었다. 모두가 평양에서 내려온 박사에 상당한 기대를 했으나 솔직히 강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박사는 학생들을 깨우치는 교수방법의 우월성에 대해 장시간 설명했지만, 현직 교사들의 관심은 구체적인 실현 방법이었다. 방법을 아이들에게 도입해야 성과를 내고, 그 우월성이 표현될 텐데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우월성만 강조하니 허무하기 그지없던 생각이 난다.

탈북학생들, 실기·체험·토론에 어려움 커

그래도 교사들의 교수방안 중 한국의 수행평가 형태와 가장 유사한 것을 꼽자면, 예습·복습 과정에서 내주는 숙제일 듯 싶다. 2000년대 중반쯤 북한 교육성 방법국에서는 교수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 한 가지 방법으로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하면서 참고서를 이용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그나마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혁명역사와 같은 과목들이었는데,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회고록과 결부하여 답을 써오게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회고록을 그대로 베껴오는 것에 그쳤다. 문제는 그 회고록도 매 가정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간부 집이나 도서관에만 있으니 아이들이 숙제를 한 번 하려면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학생과 학부모들의 원성을 커져갔고, 결국 이러한 방법은 효과적이기는커녕 오래갈 수가 없었다.

북한이 주입식 교육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에는 크게 체제적 한계와 시험방식이 작용한다고 본다. 가령 수업시간에 토의가 길게 이어질 수 없다. 논쟁의 골이 깊어지면 당 정책이나 역사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북한사회 특성상 어떻게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까? 시험방법 또한 주입식 교육을 키우고 있다. 예를 들어 ‘○○ 회의에서 내놓으신 방침은 무엇인가?’ ‘△△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등의 시험 문제에는 교과서 내용만 암기하면 좋은 점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방송에 출연하는 탈북자들이 “북한 시험은 암송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다 이런 교육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학교를 다니며 암기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던 청소년들은 실기평가, 체험학습, 토론식 수업 등을 실시하는 남한 학교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교사인 내게도 책임이 있었다. 당시 외국에서는 수업을 어떻게 하고, 과제는 어떻게 제시되는지, 성적평가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또 알려주는 기관이나 사람도 없으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교수방법이 개선될 수 없었다고 늦은 변명을 하고 싶다. 하긴 교사인 나조차 주입식 교수 방법을 받았으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역부족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교육정책으로 인한 한계점의 책임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떠맡아야 한다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 특히 어려서부터 사고의 범위를 최대한 넓힐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고등교육에서 능동적 사고를 겸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교육이 국가 부흥의 기초가 되는 것임을 알고 있다면 다양한 접근법에 대한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창의적 사고 교육이 추세인데, 북한만 과거 방법을 고수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오늘날 외국에서 한국의 교육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새삼 한국의 교육이 앞서있구나 느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대학생들은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지만, 탈북자 대부분이 단편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다. 이러한 면이 모두 교육과정의 차이가 만든 결과가 아닐까? 아직 오래되지 않은 남한 생활에 아직 다 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한국의 교육은 학생이라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발전해 가지만, 북한의 교육은 당과 교육단체라는 공급자 중심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이 남북한 교육정책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사회주의가 교육정책에도 투영되고 있음을 느낀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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