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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대북·통일정책, 이상주의 벗어나 현실주의 회귀 예고 2014년 5월호

시론 | 대북·통일정책, 이상주의 벗어나 현실주의 회귀 예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과 환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과 환담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에 중점을 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일명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이 구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각계에서의 후속 조치 논의는 무척 활발하다. 정치권과 진보세력들은 5·24조치 해제를 주장하고 있고, 경제계에서는 한반도판 마셜플랜을 제안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통일금융 인프라 구축방안을 연구 중이고 은행권은 북한개발사업 지원계획과 통일비용 축소방안 연구에 나섰다.

드레스덴 구상 핵심은 북한주민 배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 실현을 위해서는 이 제안의 의미와 특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드레스덴 연설은 과거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한 제안이 아니라 북한주민과 세계를 향한 메시지라는 점이다. 북한 정권이 반길만한 내용도 없고 북한 정권의 호응을 간곡히 요구하는 내용도 없다. 드레스덴 구상에서 북한 정권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둘째, 드레스덴 구상은 북한주민에 대한 배려가 핵심내용이라는 점이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북한 산모와 유아의 영양지원을 위한 모자패키지 사업, 민생 인프라 지원 등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들이다. 또 박 대통령은 남북 간에 신뢰가 조성되면 교통·통신 등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겠다고 하면서도 “북한주민들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못 박고 있다. 역대 서독 정부가 대동독 관계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이 ‘인간에 대한 배려’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대북지원 시 유엔, 국제적십자, 세계은행(World Bank), 유럽 비정부기구(NG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 하에 추진하겠다는 점이다. 앞으로 북한 정권이 우리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할 경우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며, 때로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행사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넷째, 이 제안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지원을 제의하면서도 대규모 경제협력은 남북 간에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섯째,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도 담고 있다. 북한의 민주화, 인권 존중 및 핵 포기를 요구하면서도 ‘인간의 존엄’, ‘자유번영’, ‘정의와 평화’ 등의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방향과 정책의 성패 여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드레스덴 구상의 의미와 배경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앞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이 과거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주의로 돌아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북한을 포용하고 지원하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어 왔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끝난 데다, 독일통일이 기민당의 ‘힘의 우위’ 정책이 맺은 결실이라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정책기조를 현실주의로 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2012년 11월 대선후보 시절 대북·통일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최근 통일준비위원회 출범계획을 밝힌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서독 정부, 인간에 대한 배려 가장 중시

박 대통령의 이러한 대북·통일 정책 기조의 변화는 독일통일에 대한 통찰이 바탕이 됐을 가능성이 많다. 그동안 우리는 브란트의 동방정책, 화해·협력 정책과 이에 따른 교류·협력 확대가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에서 “주민 간의 지속적 교류가 통일 직후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언급함으로써 교류·협력 확대가 독일통일의 핵심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독일통일의 과정과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대북·통일 정책이 독일처럼 현실주의로 선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열어 놓되, 남북관계에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 장래 통일에 도움이 될 일들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대북 인도적 지원도 ‘밑으로부터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순수한 인도적 목적에 중점을 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목적의 지원이라면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으로도 정책목표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북한이 신뢰 조성에 성의를 보이면 이에 상응하는 호의로 응답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방향에서 드레스덴 구상 실현에 노력한다면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드레스덴 구상에 경제협력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해서 저마다 나서서 통일에 기여하겠다고 부산을 떨 필요도 없다. 이 같은 일은 조용히 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세습체제가 유지되는 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대북관계에서 작은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유도에 노력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달성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대북·통일정책이 북한을 포용하고 지원하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었으나, ‘햇볕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끝난 데다 독일통일이 기민당의 ‘힘의 우위’ 정책이 맺은 결실이라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정책기조를 현실주의로 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염돈재 /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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