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5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머저리 돈 받으세요” 2014년 5월호

print
윗동네 리얼 스토리 39 | “머저리 돈 받으세요”

6년 전 한국에 입국하여 서울에 정착한 A씨는 어느 날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남편과 전화로 만났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떠나 온 A씨에게 있어 남편의 신상이 못내 걱정되어서다. 떠나올 때 남편 몰래 안내자를 따라 국경을 넘은 A씨다. 같이 동행하기엔 너무 완고한 남편이어서 ‘거사’를 알리게 되면 자칫 큰일이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녁은 잡쉈냐.”는 소리에 남편은 “무시래기 죽으로 한 끼 때웠다.”고 힘없는 소리로 대답한다. A씨는 울컥했다. 알 수 없는 설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강냉이로 삶은 무를 가린 A씨

A씨는 19살에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천해양식장 노동자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은 당에서 하라는 대로만 수걱수걱 일하는 알짜배기 충신이었다. 아기가 둘이나 태어났지만 아무런 부업이나 장사도 없이 그저 배급에만 매달려 살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이후 배급이 오리무중으로 끊기게 되자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졌다. A씨도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남편이 일하는 양식장에 일하러 다녔다. 출근하지 않고 제 식구 밥벌이를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있는 상황이어서 어느 날부터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양식장에 나갔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풀어 놓는 때가 A씨에게는 제일 난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채에 친 무를 삶아 도시락을 채우고 그 위에 살짝 누런 강냉이밥을 얹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숟가락을 90도로 내리찍어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먹노라면 속에 담은 무 삶은 것이 보이지 않고 강냉이밥을 먹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당시 A씨와 달리 일을 나온 다른 여인들은 남편들의 벌이가 괜찮아 밥술이나 먹던 아낙들이었는데, 어느 날 점심, 양식반 반장의 아내가 “오늘은 나와 밥 바꿔 먹자.”며 A씨의 도시락을 가져갔다. ‘안 된다, 된다’ 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결국 강냉이밥 속의 삶은 무가 드러났다.

모두 입을 ‘하’ 벌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A씨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퇴근해 들어와 퍼런 죽을 쑬 때면 일곱살짜리 어린 딸이 “엄마, 나 흰밥 한 그릇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야.” 하는 소리에 펄펄 끓는 죽 솥에 머릴 콱 틀어박고 싶었다는 A씨, 집안 사정이 이런 상황인데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급도 안 주는 직장에만 열심히 출근하는 남편을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더 이상의 주춤거림은 결국 애들을 다 굶겨죽인다는 결론에 이르자 A씨는 마침 닿은 탈북의 손길에 식구의 운명을 걸었다.

남한에서 배고픈 걱정을 모르고 학교를 다니는 애들을 볼 때면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이 바로 남편이었다. A씨는 떨어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이젠 애들이 있는 한국에 와요.” 했다. 잠시 후 남편은 “날 반동으로 만들지 말고 당신이 와. 내 당에 잘 말해 용서하게 만들테니.” 한다. ‘역시 무를 삶아 끼니를 에우면서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A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청했다.

“나는 당신 곁으로 가고 싶어도 이젠 애들이 안 갈 거예요. 하얀 쌀밥에 고깃국도 가려서 먹는 애들인데, 그 고급입맛에 당신은 또 무를 삶아 먹이려고 그러세요?”

그러자 남편 대답이 참 가관이다. “당신, 자본주의 단맛에 아주 기막히게 머저리가 됐어. 대체 애들 교양을 어떻게 하는 거야? 범의 굴에 들어가도 제정신은 차리랬다고, 적국에 들어갔어도 애들 교양은 똑바로 했어야지. 이게 대체 뭐야?” 귀청이 먹먹했지만 A씨는 합당한 말을 얼른 찾아낼 수 없었다. 기가 막혀 머뭇거리는데 남편의 소리가 다시 울렸다.
TB_201405_37

“단 한번이라도 인간다운 식사 좀 하세요”

“그 정도면 여기 안 오는 게 낫지. 이미 변질될 대로 된 오물인데 내가 당에 아무리 좋게 말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하고 남편은 전화에 대고 꺽꺽 운다. 남편은 울지만 A씨는 서글픈 웃음이 샌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남편, 그래도 못 본 척 할 수 없는 애들 아버지다. A씨는 다시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여보, 외골수 당신이 참 멋있네요. 당신 말대로 내 애들을 잘 타이를 테니 몸 건사 잘하세요. 돈 조금 보냅니다. 자본주의 머저리가 보내는 것이니 단 한번이라도 인간다운 식사 좀 하시라고요. 머저리 돈 안 받는다고 소리치지 말고.” “안 받기야 뭘, 고마워, 근데 원래 돈이란 건 말이지, 머저리한테 더 많아.” A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내내 씁쓸했다. 북한 정부의 세뇌정책이 낳은 진짜 충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