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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모든 시름 잊고 하나 되는 운동회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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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17 | 모든 시름 잊고 하나 되는 운동회

평양 중학교 학생들의 청소년운동회 모습. 옷에 달린 ‘금강산’ 팀명이 눈에 띈다.

평양 중학교 학생들의 청소년운동회 모습. 옷에 달린 ‘금강산’ 팀명이 눈에 띈다.

아침부터 학교 마당(운동장)에는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다니고, 음식 보따리를 가득 싸온 열성 학부모들의 모습도 이따금 보인다. 마당 밖에는 장사꾼 몇몇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아이들에게 운동회 장소를 물어본다. 정보력이 좋고 재빠른 장사꾼들은 며칠 전부터 어느 학교는 어디로 간다는 것을 알고 여유롭게 움직인다.

전교생이 마당에 다 모이자 청년동맹지도원이 간단한 훈시를 한다. 이후 대열을 지은 무리가 학교를 떠난다. 나지막한 야산에 도착하니 벌써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얼음과자(아이스크림), 얼음물, 과일, 당과류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모여 있는 듯하다. 모두가 자리를 정돈하자 일순간 조용해지며 총책임자가 중대발표를 한다. “오늘은 압록강, 두만강 조로 나뉩니다.” 자기 조가 호명될 때면 함성을 지르고 열기를 고조시키며 초반 응원이 시작된다. 교사들이 앞에 나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삼삼칠 박수, 파도타기 등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청군-백군? 북에서는 압록강-두만강!

북한에서는 봄·가을 연 2번에 걸쳐 소풍과 운동회를 실시한다. 학교별로 사정은 다르겠지만, 요즘 이 둘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며 행사 주관처, 장소, 보물찾기 유무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체육대회의 형식을 갖고 있다. 운동회든 소풍이든 대체로 학급 수, 학생 수에 따라 2~3개 조로 나뉜다.

한국에서 청군-백군으로 편을 나누어 운동회를 준비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보통 압록강-두만강, 백두산-금강산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펼친다. 최근에는 일심-단결, 창-방패, 결사-옹위 등의 명칭으로 나뉘기도 한다. 행사가 진행되기 대략 열흘 전이면, 조 편성부터 조장, 응원대장 등의 명단을 발표하고 경기종목, 종목별 참가 학년과 인원수, 종목별 점수, 응원점수 등 세세한 규칙들을 정한다. 일반적으로 교장과 부교장을 양쪽 조에 배치하여 학급 수, 인원수에 따라 편성한다. 학교에 운동비품이 잘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각 조장들은 조에 소속된 담임들을 모아놓고 병, 나무토막, 공, 소칠판, 륜(훌라후프) 등 종목별 준비물과 응원소품을 분담한다. 이때 청년동맹지도원이나 각 조장의 성격에 따라 단체복을 준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운동회 때 입을 체육복 외에도 학생들끼리 단체복을 준비하기 위해 디자인이나 색깔을 따로 정해 구입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단체복을 유료로 구입하는 데에 차이가 없겠지만,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한다면 북한 학생들에게 이는 굉장한 부담이 되기도 한다. 각 조가 정한 색깔의 운동복을 얻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힘겹게 살아가니 북한 근로자 평균월급의 몇 달치에 해당하는 옷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들의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가의 계획체계가 무너지고 시장의 역할이 커진 요즘에는 팀 별로 맞추기로 한 색깔의 옷을 구하기 위해 모두가 시장에 모여든다. 그만큼 운동회 풍경도 과거 배급되던 시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운동회에도 사상훈련 … 절정은 사람·물건 찾기

본격적인 운동회가 시작됐다. 경기는 대체로 간단하고 개별적인 종목에서 힘들고 단체적인 종목으로 진행된다. 오늘 종목에는 륜(훌라후프) 안에 두 명이 들어가 뛰기, 병끼고 달리기, 자루 안에 두 다리 넣고 뛰기, 발목매고 달리기(2인3각 달리기), 수학문제 풀기, 머리에 공 이고 달리기,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뛰기, 씨름, 기마전, 박 터뜨리기, 줄 당기기(줄다리기) 등이 채택됐다. 군사종목도 눈에 띈다. 달려가서 누가 먼저 군복을 입고 벨트를 차고, 총을 메고 빨리 달리는지 겨룬다. 재빠르게 달려가서 미군형상을 몽둥이로 때리고 돌아오는 종목도 있다. 북한에서는 운동회에도 사상훈련적인 면이 빠질 수 없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에 치러지는 사람·물건 찾기이다. 저마다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의 손을 잡고, 혹은 어렵사리 찾아낸 여러 물품을 쥐고 달린다. 물건을 찾느라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구경하는 이들은 폭소를 금치 못하고, 응원하는 이들은 애간장을 태운다. 잘 달리지 못하는 여 선생님은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덩치 큰 고학년들은 답답함에 직접 선생님을 업고 냅다 달린다. 이때만큼은 모두 하나가 된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다. 나중 수업시간에는 이 순간이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한다.

낮 12시쯤이 되면 경기가 끝나고 바로 경기 총화를 한다. 상품으로는 위대성·충실성 교양자료, 볼펜, 지우개 등이 있다. 학교 사정에 따라 상품이 없는 경우도 있고, 일부 상품을 마련하지 못한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개별적으로 부탁하기도 한다. 이후 점심시간에는 부모들이 정성껏, 동시에 눈물겹게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 대다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자기가 좋아하는 학과목 선생님 도시락을 싸오기도 한다.

2시부터는 학급별 예술소품 경연(장기자랑)이 있다. 행사 며칠 전부터 학급별로 경쟁적으로 준비한다. 이것은 학급의 조직력, 단결력, 예술적 기량, 규율 등을 보여주는 계기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노래면 노래, 시면 시를 마음껏 뽐내본다. 간혹 고학년들은 기타를 가지고 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기도 한다.

한국의 운동회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쩜 이렇게 북한의 모습과 비슷한지 모르겠다. 며칠 동안 운동회 응원준비를 하는 모습이나, 구체적인 경기 종목, 단체복을 맞춰 입는 모습 등등. 물론 이와 같은 풍경도 200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가능했던 최근 도시의 모습이다. 아사자가 넘쳐나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생각도 못했다.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물론 사정이 나아진 최근에도 여전히 운동회를 준비하는 엄마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존재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단다. 운동회 날만은 모든 시름을 잊는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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