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5월 1일

통통인터뷰 | “통일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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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인터뷰 | 오영필 다큐멘터리 감독
“통일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ITV_201405_56 덜컹거리는 트럭 뒤칸. 지금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망과 원망이 뒤섞인 그의 눈은 분명 “당신 때문이야.”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억울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이후 북송될 그의 앞날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영필(44) 씨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취재차 간 중국에서 몽골과의 국경을 넘는 탈북자를 돕는 것이 발각되어 3개월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 알게 된 한 선교단체 대표를 통해 일본 기자를 소개 받았다. 일본 기자는 최근 일본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는 탈북자들이 중국 주재 외국 영사관에 진입하는 과정을 취재하려 하니 도움을 달라고 했다. 계획은 치밀했다. 광저우의 외국 영사관들은 독립된 건물이 아닌 일반 건물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경계가 허술하고 진입이 쉽다고 설명했다. 영사관의 구조와 탈북자들의 진입 방향 등도 상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모든 계획이 탈북 과정을 취재하기 위한 소위 ‘기획탈북’임을 깨달았다. 촬영 무대와 스태프, 주연인 탈북민들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이 과정들을 카메라에 담기만 하면 됐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옳은 일이 아니라는 울림이 계속됐지만, 비디오 저널리스트로서 욕심이 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취재를 위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대한민국 품에 안겨 환하게 미소 지을 탈북민들의 모습도 떠올렸다. 2003년 결국 그는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거사 3일 전, 점차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TBS〉측은 오 씨에게 가이드 역할을 함께 맡겼다. 뭔가 불편했지만 막역한 선교단체 대표와의 관계도 있었고, 〈TBS〉와의 계약과 이날을 기다려온 탈북민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차근차근 이 날을 준비해온 그들을 믿기로 했다. 광저우역 근처 한 가게에는 다섯 명의 탈북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들과의 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들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공안들은 줄곧 미행하며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었다.

그는 이 일로 17개월간 다시 복역하였다. 관련자들에 대해 어떠한 것도 발설하지 않은 채 신변을 보장해주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석방을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그들은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깊은 배신감이 들었다. 함께 후송됐던 탈북자들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북송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 온 것이 아닌, 한국행을 결심한 탈북이었기에 행여 그들에게 어떠한 보복이 가해졌을까 불안하기만 했다. ‘내 행동이 그들을 더 위태롭게 만들었구나.’ 자발적이고 순수한 목적에서 탈북을 감행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혹은 특정 의도가 담겨있는 기획탈북이 오히려 탈북자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배신감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북한주민을 위한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오영필 씨는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 ‘그날’의 뮤직비디 오 감독을 맡았다. 극중 탈북청년 ‘요셉’을 맡은 최유진 씨는 실제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로 의미를 더했다. 사진은 2012년 7월 10일 팔당댐 부근 자전거 도로에서의 촬영 장면이다.

오영필 씨는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 ‘그날’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았다. 극중 탈북청년 ‘요셉’을 맡은 최유진 씨는 실제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로 의미를 더했다. 사진은 2012년 7월 10일 팔당댐부근 자전거 도로에서의 촬영 장면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혼란스러웠다. 정신적 충격과 슬럼프가 반복됐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나는 왜 카메라를 들고 있는가.’ 스스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결국 나름의 답을 찾아갔다.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 약초를 캐죠. 하지만 그 약초는 동시에 돈이 되기도 해요. 저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를 캤다기보다 돈을 위해 약초를 캤던 거죠. 제 스스로가 병들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카메라를 들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던 시절은 잊고 명예나 유명세를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것이다. 병든 스스로를 시간에 맡기며 과거를 치유해 갔다.

현재 오영필 감독이 카메라를 드는 목적은 바뀌었다. 지난날의 경험들을 토대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금지된 여행>을 만들었다. <금지된 여행>은 2009년 서울 기독교 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작한 두 번째 작품 <거짓 우화> 또한 좋은 평을 받았다.

“북한주민을 위한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단 특정 목적을 띤 기획탈북은 지양했으면 해요. 그건 그들을 위한 진정한 손길이 아니에요.” 그는 북한주민을 북한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국에 머무는 사람들, 남한 땅에 정착한 사람들로 분류했다. 과거에는 도움의 손길이 더 급하다고 볼 수 있는 북한 거주민, 중국 체류민들에 더 초점을 맞춰 행동했다면, 그는 이제 남한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앵글을 맞춘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저의 그릇을 시험할 수 있었어요. 제 부족한 역량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만 앞세운 일들을 했던 거죠. 이제 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일들을 시작으로 점차 그릇을 키우려 합니다.” 현재 이러한 구상들은 ‘통일보다’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통일보다’는 눈으로 통일을 본다는 의미와 더불어 ‘통일보다 ~한 것은 없다’라는 의미가 있다. 프로젝트는 남남북녀의 1일 데이트 과정을 영상으로 담는 것부터 시작됐다.

젊은 남북 남녀가 소개팅을 통해 남산, 박물관 등을 데이트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통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주제를 프레임 안에 담으니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거부감이 없고,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문화적으로도 접근하니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확대해가며 일반인들에게 ‘통일이 어려운 게 아니구나.’, ‘통일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있다. 다음 주제로 탈북자들이 한국사회 정착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토로한 ‘취업’ 편도 계획 중이다.

“10년 전에도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도 우리는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죠. 아마 10년 뒤에도 준비한다고 할 거에요. 준비만 하는 것보다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통일을 미래 시점으로 설정하고 막연하게 준비를 강요하다 보면 통일에 대한 우리사회의 피로감은 극에 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작 통일이 다가왔을 때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하는 일일 수 있다.

“준비만 하기보다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통일보다’ 프로젝트 팀원들과의 회의 모습

‘통일보다’ 프로젝트 팀원들과의 회의 모습

이에 대해 오영필 감독은 통일을 현재 시점으로 가져오고 일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상 매체라는 장기를 살려 통일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통일을 가시적으로 구체화하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통일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일반 사람들이 더 이상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통일의 삶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다.

10년 전 그날의 기획탈북이 성공했다면 옆 자리의 청년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까? 또한 오영필 씨는 어떠한 현재를 살고 있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현실의 통일이 아닌 미래의 통일을 향해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10년 전 그날의 실패를 실패라고만 규정지을 수 없을 듯하다. 일상에서 작은 통일을 실천하고 있는 그처럼, 우리도 현실의 삶에서 통일을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만의 통일 실천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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