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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가 숨 쉰다 | 한반도 최후의 맹수, 삵 2014년 5월호

DMZ, 평화가 숨 쉰다 7 | 삵
한반도 최후의 맹수, 삵

TS_201405_67 겨울이면 파주 공릉천에는 개리, 재두루미, 털발말똥가리, 큰기러기 등 희귀한 철새들이 많이 날아와서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을도 다 사라져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함께 조사하던 회원이 “와~ 저 고양이는 참 크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차 앞을 스쳐지나가는 물체를 보고 나는 스프링처럼 자동차 밖으로 튀어갔다. ‘삵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무조건 셔터를 눌렀다. 이것이 내 생애 처음으로 삵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삵은 살쾡이라고도 한다. ‘살쾡이’의 ‘쾡이’가 ‘괭이’와 연관이 있는데, ‘괭이’는 ‘고양이’의 준말이다. 그러나 ‘삵’은 그 자체로 ‘살쾡이’를 뜻하는 단어이다. 모습이 고양이와는 비슷해도 단어 ‘고양이’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던 단어였다. 호랑이가 ‘호(虎, 범)’와 ‘랑(狼, 이리)’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호랑이와 이리’란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범’으로 분류하는 것과 동일한 경우이다.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포유류 2급 보호종으로 지정된 삵은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가 사라진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고양이과 동물 중 유일하게 먹이 사슬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야생 맹수다. 고양이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분류학적으로 속이 다르고, 오랜 기간 완전히 다른 진화과정을 거쳤다. 얼굴 앞쪽에 세로 줄무늬가, 황갈색 몸통엔 검은 점무늬가 있고, 호랑이나 표범 등에 나타나는 귀 뒷면의 흰색에 가까운 누런 반점이 선명하다. 몸길이 55∼90cm로 고양이보다 크며 불분명한 반점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꼬리길이가 25∼32.5cm로 분화된 가로띠가 있으며 몸길이의 절반 정도크기로 두터우며 끝이 말리지 않아 매우 우아한 자태는 일반 고양이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환경부 멸종위기 포유류 2급 보호종

삵은 참 특이한 행동을 한다. 스스로 맹수임을 자처하여, 걸어갈 때 일직선으로 이동하며 어떤 위험이 닥쳐도 고양이와 다르게 오던 길을 뒤돌아가는 법이 없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는 우회하여 앞으로만 전진하고 아무리 큰 위협을 해도 고양이처럼 소리 지르며 갑자기 도망가지 않는다.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고 빠르게 자취를 감출 뿐, 겁에 질려 요동하지 않는 맹수로서의 품위가 있다.

삵은 벵골살쾡이의 아종으로 우수리,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및 한반도 등에 분포하며 만주살쾡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쓰시마섬에 서식하는 쓰시마살쾡이를 같은 아종으로 보는 견해와 독립아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주로 야간에 활동하는데, 때로는 낮에도 먹이 사냥에 나선다. 작은 들쥐류, 야생조류, 물고기, 곤충, 개구리, 청설모, 산토끼, 꿩 등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1970년대 쥐잡기 운동, 생태계 환란 초래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무척 흔하게 볼 수 있는 맹수였는데, 1970년대 이후 쥐와 벌레잡기 열풍이 불면서 엄청난 숫자의 삵이 쥐약과 살충제에 의해 희생되었다. 필자는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가장 싫은 숙제가 변봉투와 쥐꼬리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쥐잡는 일은 애국이고 국가경제를 살리는 활동 중의 하나로 추진될 정도였다. 식량자급이라는 목표 아래 일사 분란한 행정력이 다양하고 조화로운 야생동물들의 터전을 일률적으로 만드는 등 생물들 상호 간의 질서에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 야생동식물들이 살아갈 기반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한반도의 생태계는 일대의 환란에 빠진다. 삵들의 터전뿐만 아니라, 여우 호랑이, 늑대, 표범들의 먹이사슬도 이때 완전히 무너지면서 한반도에서는 삵 이외의 모든 맹수들이 생태계의 파괴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5년 전 초여름, 민통선에서 조사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삵 가족을 만났다. 3주 후, 그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갔을 때는 로드킬 당한 새끼를 보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야생동물의 천국 DMZ일원에서 삵이 로드킬 당할 만큼 야생동물의 행동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채 도로가 건설되고 있으며, 지금도 생태계복원 혹은 보호장치 없이 생태관광의 깃발 아래 무시로 자전거도로로 개방되거나 끝없이 인삼밭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삵은 한반도 야생상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맹수로, 강원도 산간 지방이나 DMZ, 우포늪 그리고 시화호 등지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일정부분 회복이 되었으나,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아 온 맹수이자 조선시대의 민화나 그림에도 곧잘 출연했던 동물의 운명이 기구하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삵을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쓰시마삵은 1994년부터 보호를 위한 증식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와는 좀 다른 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인공 포유한 삵을 시화호에 야생으로 방사하는 사례가 있지만 증식을 위한 연구와 활동은 미미한편이다. 삵은 한반도 생태계를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동물이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서식공간에 대한 인식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회복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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