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것이 궁금해요 | 식량난은 어느 수준인가? 2014년 6월호
북한, 이것이 궁금해요 33 | 식량난은 어느 수준인가?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이한 북한에 전례를 볼 수 없는 심각한 봄가뭄이 덮쳤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월 2일 “2월 중순부터 4월 30일까지 북한 전역의 평균 강수량은 23.5㎜로 평년 83㎜의 35% 정도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강수량은 1982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서해 지구에서 수십년 만에 처음 보는 왕가물(아주 심한 가뭄)은 농사에 매우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올해 알곡생산 목표를 수행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가물 피해를 막는가 못 막는가 하는 데 크게 달려 있다.”고 밝혔다. 가뭄피해를 막지 못할 경우 올 겨울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의 식량난은 사회주의적 집단영농 생산방식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침체, 주체농법의 획일적인 적용, 농업기반시설 및 영농자재의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북한 식량난의 가장 큰 원인은 정권의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식량난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공업의 침체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 다음 원인은 협동농장방식의 집단경영의 결과로, 김일성이 내세운 주체농법이라는 농사원칙 때문이다.
집단영농방식과 주체농법 실패로 식량난 가중
1980년대에도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평균 415만t에 불과하여 정량배급 기준으로 이미 평균 200만t의 부족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1987년부터 이미 1인당 배급량을 평균 700g에서 22%를 감량해 배급하고 있었다. 다만 이 당시에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지원, 일부 자체 수입능력의 유지 등으로 기근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지원 및 우호무역의 감소, 경제난으로 인한 농업원자재 생산의 급락, 연속적인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생산량도 400만t 이하로 급락하면서 심각한 기근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근이 가장 심각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1995~1997년 사이 식량생산은 평균 354만t에 불과해 감량배급 기준으로 식량부족량이 평균 164만t에 이를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양호한 기상조건, 남한의 지속적인 비료지원과 국제사회의 농업지원, 그리고 북한 당국의 식량 증산정책 등에 힘입어 매년 400만t 이상의 생산수준을 다시 회복하고 있지만, 2000~2008년 사이 식량부족량은 여전히 매년 123만t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식량난을 초래한 요인 중 하나인 김일성의 주체농법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황해북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은 벼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곡창지대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의 민간 대표단은 끝없이 펼쳐진 그 곡창지대를 참관하고 북한 농업성에 합작농사를 제안하였다. 일본의 선진농사법을 도입하면 정보당 10t의 벼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정보당(1정보는 3,000평) 5t의 수확을 지시한 북한 농업성으로서는 환영할 만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의 농사법으로 정보당 10t의 벼를 수확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선전한 김일성이 내놓은 사회주의주체농법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선진농법을 외면한 북한에서는 현재 호미를 쥐고 김을 매고 낫으로 벼를 다루고 있다. 공업이 몰락하고 석유가 부족해져 봄이면 인분을 사용하여 마을마다 거리마다 인분 냄새가 진동하고, 농기계 대신 소를 이용하여 밭갈이를 하고 짐을 실어 나른다. 중세기와 다름없는 이러한 현실에서 식량난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중국 농업개혁과 식량문제 해결 참고해야
농민은 1인당 하루 800g을 기준으로 1년 분배, 즉 가을 타작 때 배급식량의 양을 계산하여 지급받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그 분배량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만을 지급받았다. 분배된 식량만을 가지고서는 죽으로 끼니를 잇는다고 해도 보릿고개(다음해 6월까지)를 버틸 수 없다. 이에 개인소유 밭에 목숨을 걸고 농사를 짓는다. 주거 지역 인근의 산은 어디를 둘러봐도 개인의 밭으로 모두 변했다. 그런 밭들은 경사가 급하고 비료를 쓰지 않는다 해도 농장 밭보다 곡식이 더 잘 자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부지런히 개인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다. 이러한 개인 밭이 불법이라고 해도 북한의 현실에서 이는 주민들의 생계와 관련되기 때문에 금지할 수 없었다.
북한이 이런 식량부족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1990년대 중반 같은 집단 아사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남한과 국제사회의 연평균 100만t 이상의 식량지원, 개인경작지 증가, 식량의 시장거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중 국경을 통해 상당한 정도로 거래되는 식량 밀무역과 전국적 규모로 발달된 장마당은 2008년 이후 국제사회 및 한국의 지원이 거의 중단된 상태에서도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자체의 식량생산만으로는 기근을 막을 수 없을 만큼 식량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배급과 분배는 정부와 주민을 연결시키는 주요 고리인데 그것이 작동되지 않고 주민들은 모두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1990년대 이후 만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새로운 농업정책들을 추진했었다. 식량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의 농업정책들은 여전히 집단적 영농방식과 계획적 생산방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농업기술적 측면 내지 생산의 효율성 향상에만 집중된 정책으로, 식량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의 경우 개별 농가에 토지 이용권과 더불어 생산 및 경영권의 이양, 농업 생산물의 자율 판매권까지 부여하였고, 결국 인민공사까지 해체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였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리 /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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