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북·일관계, 순풍 기대할 수 있을까? 2014년 7월호
<편집자주>
북한과 일본이 지난 3월 30일 1년 4개월 만에 정부 간 공식 회담을 재개한 뒤 4월 상하이, 다롄 등에서 추가 협의를 진행한 결과 5월 29일 스톡홀름에서 최종 합의문을 발표했다. 양측은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한 북한 당국의 포괄적인 재조사 실시와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 방침에 합의하고 향후 국교 정상화도 추진키로 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북·일관계는 일단 급진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국이 직면한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합의 이행에 다양한 복병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에 북·일합의의 경과와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각국의 득실 및 전망을 알아보았다.
기획 | 북·일 납치문제 재조사 합의의 겉과 속
북·일관계, 순풍 기대할 수 있을까?
북한과 일본은 지난 5월 26~2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납북 일본인’ 재조사에 합의하고, 일본은 사실상 대북제재를 해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주요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①북한의 납북 일본인 재조사, ②북·일 간 인적왕래제한 해제, ③대북 송금규제조치 해제, ④인도주의 목적의 북한선박 일본입항금지 해제, ⑤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지원 실시 검토, ⑥북·일평양선언에 따른 일본의 재일 조선인 지위문제에 대한 성실한 협의 등이다.
그동안 일본은 2006년 10월 제1차 북핵실험, 2009년 5월 제2차 북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2013년 2월 제3차 북핵실험 등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강화해 왔다. 그 내용은 모든 북한국적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산 상품의 수입 전면 금지, 북한 정부 관계자에 한정되었던 입국 금지조치의 민간인으로 확대, 조총련의 대북송금 대폭 축소 등이었다.
한·일관계 만큼 어려운 북·일관계

1977년 북한에 납치된 딸 요코타 메구미(실종 당시 13세)의 부모인 시게루·사키에 부부가 지난 3월 24일 도쿄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북한은 메구미가 결혼해 딸을 낳은 뒤 우울증을 겪다 1994년 4월 자살했다고 밝히고 이후 2004년 유골을 일본 측에 넘겼지만, 일본은 유전자 검사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드러났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대화는 1990년 9월부터 시작되었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여 북한의 일본인 납치 시인과 5명의 일본인 귀환을 받아냄으로써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2004년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반북 감정으로 인해 북·일관계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2006년 10월 1차 북핵실험을 맞이하였다. 이후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다양한 대일 위협 요소들로 인해 북·일관계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으나 북한과 일본은 제3국에서 국장급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2012년 12월 12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발사로 인해 또다시 대화는 중단되었다. 이러한 북·일 간 긴장도 오래가지는 못하고 2013년 5월 이이지마 이사오 내각참여의 방북을 계기로 극적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이후 몽골, 베트남, 중국 등에서 북·일 접촉은 지속되었고, 드디어 ‘5·28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출된 북·일 간 합의는 과연 잘 지켜질 것인가? 북·일관계는 한·일관계 만큼이나 풀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민족감정이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대화하고 교류협력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적대감과 복수심이 용솟음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출된 북·일 간 합의가 향후 순풍에 돛 단듯이 잘 되어갈지 의문을 표하면서 북·일 간 합의 내용을 평가해 보려 한다.
첫째, 일본인납북자 재조사 문제이다. 그동안 일본인 납북자는 13명이 전부인데 8명은 사망하였고, 5명만 살아있어서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귀국시켰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분명한 숫자는 17명이지만 실제로는 100명이 넘고 ‘특정실종자’까지 합치면 860명이 넘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번 재조사를 통해 과연 양국 간 차이가 명쾌하게 해결될지 장담할 수 없다. 만일 재조사를 통해 일본인 납치자가 밝혀진다면 일본 내에 2002년 이후처럼 또 다시 강한 ‘반북열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본인들이 북한의 진정성을 인정하여 너그럽게 북한을 용서하고 아베 정부가 북·일관계 개선에 임하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내 극우파들이 북한의 ‘악마성’을 내세우며 군사대국화를 꾀하려는 시기에 이를 용인할지 의문이다.
둘째, 북·일 간 인적왕래제한 해제문제이다. 북한 고위 당국자의 일본방문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북핵실험과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가 북한 주요인물에 대한 해외여행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것은 조총련의 방북 확대 및 일본인의 북한관광 허용 등이 아닐까 생각된다.
셋째, 대북 송금규제조치 해제문제이다. 일본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 송금 신고 상한선을 1,000만엔 이상에서 300만엔 이상으로 대폭 낮추었다. 대북 송금 규제문제는 일본인 납치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문제와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의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이 대한(對韓) 압박카드로 이를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혹은 북한의 태도를 보아가면서 그 상한선을 500만엔 정도로 상향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적 지원, 미국 용인 범위 내에서?
넷째,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선박 일본입항금지 해제문제이다. 북한 원산과 일본 니가타를 운항하며 사실상 무역선 역할을 하던 ‘만경봉92호’는 2006년 7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한 일본의 제재로 인해 운항이 중지된 채 원산항에 정박해 있다가 최근에는 금강산-나진 간 관광선박으로 변신했다. 만경봉호는 2척인데 최초 만경봉호는 1959년 재일 한국인의 북송을 맡기도 했다. 만경봉호는 북·일관계 개선의 상징물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총련의 북한방문이 허용된다면 만경봉호의 운항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지원 실시 검토문제이다. 비록 대북 인도지원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가 지속되는 시점에서 미국이 이를 용납할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도적지원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를 촉진하기 위한 촉진제 정도의 소규모가 되지 않을까 예측된다.
여섯째, 북·일평양선언에 따른 일본의 재일 조선인 지위문제에 대한 성실한 협의문제이다. 일본 내 조선인 지위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소위 한국인이 아닌 북한국적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많은 멸시를 받고 있고 심지어 테러까지 당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인학교에 대한 지원에도 차별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조선인 2~3세들의 일본 국적취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조총련 본부 매각문제도 큰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렵다. 다행히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한류’가 풍미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반한’ 또는 ‘혐한’ 감정이 극에 달하기도 하고 있다. 물론 ‘반한감정’ 때문에 ‘친북’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조선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기 힘들다.
전현준 /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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