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일본의 대(對)한반도 이중외교 다시 살아나는가? 2014년 7월호
기획 | 북·일 납치문제 재조사 합의의 겉과 속
일본의 대(對)한반도 이중외교 다시 살아나는가?
지난 5월 29일 일본 외무성 대표와 북한 대표는 스톡홀름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의 전면 재조사와 이를 조건으로 한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방침에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이 제대로 조사에 착수하면 약속한 단독 제재 3가지를 동시에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특별조사위를 만들어 조사를 개시하는 시점에 ▲인적왕래 규제 ▲송금 보고와 휴대반출금액 규제 ▲인도적 목적의 선박 입항금지의 3가지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까지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적대적이었던 북한과 일본이 상호 협력하는 데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각각 국내 정치의 현실적 필요와 양자 공동의 이익을 노린 외교적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일 간 합의된 일본인 납치문제와 대북제재 해제 문제는 양국 간에 가장 현실적인 사안이었다. 사실 북·일관계에서 국교정상화 문제, 북한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의 외교안보적 사안이 더 중요하겠지만, 일본인 납치문제와 대북제재 해제 사안은 양측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치적 효과도 큰 사안들이다. 북한으로서는 만경봉호 입출항 허용과 물자 수송 및 대북 송금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일정 수준의 인적 교류까지 성사된다면, 그동안 유엔 제재에 따른 고립과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돌파구가 생기는 셈이다.
아베, 국민 불만 납치자 문제로 무마 시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에 관한 검증 결과 공개에 앞서 지난 6월 19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관계자들이 ‘집단 자위권 행사 반대’라는 글씨를 바닥에 새기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와 자민당 정권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기활성화에 사활을 걸어 왔지만, 얼마 전 단행한 소비세인상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무역적자가 22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등 국민적 불만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게다가 아베 정권은 조만간 각의결정을 통해 집단자위권행사가 가능하다는 ‘해석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반대 여론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국내적 상황 때문에 아베 총리는 경제활성화 정책 실패와 해석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납치자문제 해결로 무마하려는 것이다. 물론 총리와 내각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달간 하락세를 보이던 지지율이 북·일합의 발표 직후인 6월 초, 5월보다 약간 올랐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내각관방부대신으로서 일본인 납치자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들이 일본에 일시 귀국한 직후 북한으로의 재귀환에 반대하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이로써 일약 국민적 인기를 얻어 총리까지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2012년 말 두 번째 총리에 출마할 때부터 임기 중 납치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인물이다.
일본의 자민당과 정치인들은 오래 전부터 ‘전후(戰後)정치 탈피’를 부르짖어 왔지만, 유일하게 북한과 전후청산, 국교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외교적 숙제로 인식되어 왔다. 전후정치의 초석을 놓은 요시다 총리, 1956년 소련과의 국교정상화를 성사시킨 하토야마 총리, 1972년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한 다나카 총리 등은 일본 현대정치에 큰 족적을 남겼기에, 역대 총리들은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업적으로 생각해 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국교정상화의 의지를 보였지만, 일본인 납치문제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 북·일 간 합의로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의 길로 접어든다면, 아베 총리는 국민들에게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내는 총리’라는 이미지와 전후 일본의 숙원과제인 북·일 국교정상화의 초석을 놓은 총리로 기억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북·일 간 합의의 주된 목적은 쌍방이 동북아지역에서 고립된 상황을 탈피하여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을 것이라는 외교적 판단에 따른 승부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日, 남북 상호 견제 통해 주도권 확보 노려
북한은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따른 전방위적 압박에 중국까지 동조하고, 미국과 한국에 대한 일정 수준의 대화 제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마침내 러시아와 일본에 대한 협조와 접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추구해 왔고, 서방에 대한 접근이 용이치 않거나 남북 간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는 일본에 접근하여 외교적 활로를 위한 교두보 마련과 한·일 간 이간을 조장하는 외교적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일본 역시 전후 한국과 북한 사이에서 이중외교를 구사하며 남북한을 상호 견제하거나 이용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0년대의 한·일회담과 재일 조선인 북송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이중외교라 할 수 있다. 당시 한·일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양국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갈등 국면에 접어들자, 일본은 한국 측의 강경 자세를 무너뜨리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재일 조선인 북송협상을 강행했다. 한·일회담이 중단되고 한·일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었지만, 이를 무릅쓰고 이후 10만명에 가까운 재일 조선인 북송의 물꼬를 튼 것이다. 한·일관계가 꼬인다면 북·일관계를 활용해 골치 아픈 재일 조선인 문제도 해결하고, 한국과 북한을 상호 견제·경쟁시켜 일본이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외교전략인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쯤 일본은 ‘한국 측의 입장이 강경하고 어차피 한·일관계가 꼬여 있다면 당분간 두고 볼 수밖에 없다. 대신 곤란한 처지에 있는 북한을 감안하여 북·일 대화에 공을 들이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납북자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고, 북·일관계가 개선되면 한국도 다시 일본에 대화를 제의해 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체제 아래,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이니셔티브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오일환 / 국무총리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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