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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누가 더 먹어야 하나?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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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41 | 누가 더 먹어야 하나?

북·중국경인 혜산시장 입구에서 두 남녀가 싸우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쌍말까지 오가자 장꾼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구경을 한다. 뼈 굵은 남자는 황소 같은 눈을 희뜩 뒤집고 당장 잡아먹을 듯 여자에게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여자도 질세라 같이 목에 핏대를 세우는데 당장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은 형상이다. 싸움이 일어난 것은 두 사람이 같이 시장에서 국수사리를 사가지고 나와 그걸 나누어 가지면서 시작됐다. 국수 10사리(1사리는 1kg)를 똑같이 5사리씩 여자가 나눴는데 거기서 화가 난 남자가 싸움을 건 것이다.

“그까짓 리어카 한 대를 갖고 뭐 주인이라고?”

TB_201407_43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종일 구루마(리어카)를 끈 것은 난데 한 사리라도 내가 더 가져야 옳지 이건 아니잖소. 네가 한 건 짐을 든 손님 끌어온 것밖에 더 있어?”, “이젠 머슴 주제에 주인에게 반말까지 해대는구나. 야, 이놈아 애초 계약할 때 반반씩 나누기로 했잖느냐?”

말을 들어보니 여자는 리어카 주인이고 남자는 여자가 고용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역전이나 장터에서 리어카로 손님 짐을 실어주고 돈을 받아 챙겨 반반으로 나누자고 한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 일을 시작할 땐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정작 하루 종일 땀 흘리며 힘을 쓰다 보니 어딘가 밑지는 것 같아 남자가 화를 낸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미 결정된 것을 리어카 주인인 여자가 번복해 줄 수는 없는 일. 싸움은 도를 넘어선다.

“야, 그까짓 리어카 한 대를 갖고 뭐 주인이라고? 나 이거 참. 네가 이젠 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물이 아주 골수까지 꼴깍 넘쳤구나. 헛소리 말고 국수 한 사리 더 내놔. 안 그러면 널 아예 매를 쳐 버릴 거야 알겠어?” 입가에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띤 여자가 맞받아친다. “야, 이놈아, 네가 내 구루마 덕에 힘 좀 쓰고 국수사릴 얻었으면 고마운 줄 알아라. 내가 없으면 네까짓 게 국수는커녕 해종일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늘이나 쳐다봤겠지! 됐어, 어서 가라 이놈. 꼴 보기 싫으니까.”

도무지 여자의 기세가 수그러들 틈을 보이지 않자 남자가 구경꾼들한테 지원을 청한다. “이보시오들, 생각해 보시우. 이 여자는 구루마 주인이랍시고 말로 손님을 부르고 난 소처럼 짐을 끌고. 그래서 얻은 걸 ‘5대 5’로 나눠요? 우리 집 식구 다섯이요. 내일 점심까지 먹자면… 아, 그건 그렇고 나 이제 술 한 병은 먹어야 되우. 그래야 내일도 힘을 쓸 수 있으니까. 이 과부 여자 인심은 개를 떼어 줬는지 내일도 날 부려 먹자면 국수 한 사리쯤 양보해서 술 한 병이야 사줘야 그게 옳은 처사지. 안 그렇수? 어디 재판 좀 해 봐요.”

그러자 구경꾼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한다. “아이고 참, 아침에 시작할 때 그리 정했으면 그걸 지켜야지.” 이는 분명 여자쪽을 편드는 목소리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하루 종일 부려먹었으면 술 한병이야 사 줘야지. 국수 열 사리 벌자면 숱한 짐을 끌었겠는데.”, “아무렴. 거 참 듣고 보니 홀아비 살림이면 이가 서 말이요, 과부 살림이면 쌀 서 말이라는 말뜻을 알겠네. 저렇게 남자를 부려먹으니까. 그 사람 힘은 쓰게 생겼구만. 그러지 말고 국수 한 사리 더 주시우.” 하는 목소리는 남자쪽을 편드는 소리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 딱 맞다.

갑자기 리어카 꾼 남자가 승기를 잡고 호기롭게 나선다. “과부동무, 똑똑히 들었지? 술 좀 먹게 어서 그쪽 몫에서 국수사리 하나 내 놓으시오.”, “참, 살다 살다 별 꼴을. 흥!” 과부는 그 말을 남기고 제 물건인 리어카를 끌고 쌩하니 가 버린다. “저런 인정머리 없는 것 그래 콱 다 처먹어라. 어디 두고 보자.” 홀아비가 여자의 뒤에 대고 삿대질을 한다. 다시는 안 볼 여자인 것처럼 말이다.

다음 날 아침. ‘과부동무’는 시장에 나가려고 출입문을 열었다. 리어카만 있으면 반반으로 부릴 짐꾼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어제 리어카를 끄는 짐꾼으로 부렸던 사내가 마당에 엉거주춤 서 있다. “왜 왔어요? 날 그리 박대하고선.”, “내 어제 잘못했소. 오늘도 국수 다섯 사리 벌게 날 좀 써 주시오.”, “안돼요. 못하면 말았지.”, “내 다시 안 그럴게요, 다시는…” 남자가 무릎까지 꿇는다. “그럼 오늘은 군소리 없이 반반으로 합니다.”, “네, 그렇다마다요.”

“어젠 잘못했소. 국수 다섯 사리 벌게 좀 써 주시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북녘마을 풍경이란다. 베어링을 끼운 리어카 한 대만 가지면 그런대로 옥수수 국수나마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언젠가 필자가 남한 어르신을 만나 위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리어카 한 대만 있으면 먹고 살았던 그런 때가 있었어. 그게 60년대 쯤 일거야.” 지금 북녘이 어르신이 말한 대한민국의 그때가 아닌가 싶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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