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7월 1일 0

시사초점 | 러시아의 남하와 북한의 지정학적 전술 2014년 7월호

시사초점 | 러시아의 남하와 북한의 지정학적 전술

러시아가 부두 사용권을 확보해 보수한 나진항 3호 부두의 모습. 부두를 콘크리트로 재포장하고 석탄을 싣는 이동식 크레인과 레일이 설치됐다

러시아가 부두 사용권을 확보해 보수한 나진항 3호 부두의 모습. 부두를 콘크리트로 재포장하고 석탄을 싣는 이동식 크레인과 레일이 설치됐다.

일본의 공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사회가 때 아닌 친일인사 파동으로 들끓고 있는 와중에 고노담화 재검증 카드로 위안부 강제동원을 희석시킴과 동시에 외교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 바로 북 · 일관계다. 지난 5월 29일 스톡홀름 북 · 일국장급 회동 발표를 통해 북한이 납북자 문제 재조사에 응하는 시점에 맞춰 대북 독자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그 다음 카드로 아베 총리의 방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6월 20일자 <아사히신문> 보도대로 아베가 8월 25~31일로 예정됐던 중앙아시아 5개국 순방 일정 대신 전격 방북 카드를 꺼내들지 알 수 없으나, 그런 얘기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대북관계 뿐 아니라, 동북아 외교 주도권에서 일본은 공세, 우리는 수세로 처지가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이제 동북아 외교의 외톨이 처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반면에 한국과 중국의 입장이 묘해졌다. 이 같은 외교적 역전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북 · 일 간 막후 접촉이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당시 북한 보위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일본 측과 채널을 개설했고, 그것을 계기로 금년 1월 베트남-3월 베이징-4월 선양 · 대련 등에서 북 · 일간 공식 · 비공식 접촉이 줄을 이었다.

日·러, 北에 외교·경제 접근 가속

지난해 말부터 재가동된 북 · 일관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양자관계를 누가 추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아야겠으나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오도록 북한이 지정학적 전략을 구사하는 측면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러시아 카드의 의미다.

북 · 러관계가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 9월 23일 나진-하산 철도 개통을 통해서였다. 원래 철도 연결은 7월에 이미 끝났으나 나진항 보수공사 등을 핑계로 개통식을 미뤄오다 9월 말 행사를 거행했다. 왜 9월말 일까. 지난해 5월 22~24일 김정은의 특사로 최룡해 방중 때의 일이다. 시진핑 주석을 만난 최룡해가 북한의 향후 스케줄에 대해 얘기했다. 즉 ‘9월 말까지 중국이 미국을 설득해 6자회담을 주선하면 김정은 제1비서가 베이징에 와서 비핵화 선언을 하겠다. 그러나 9월 말까지 중국이 실패하면 북한은 독자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은 창완취안 국방장관, 그리고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미국을 설득하려 했으나 9월 말 이전 6자회담 개최에 실패했다.

그리고 9월 말이 다 되었을 때, 북한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나진-하산 철도연결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문을 두드렸다. 나진-하산 연결이 뭐 길래 일본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건가. 북 · 러 간 다음 스텝 때문이다. 바로 청진-원산 간 철도 노선의 현대화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진-하산 구간의 현대화는 지난 2001년 김정일-푸틴 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첫걸음을 뗀 것이니, 당연히 그 다음 스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구간 상으로 보면 그 다음이 바로 청진-원산인 것이다.

북 · 일관계 앞서 북 · 러관계 지렛대로 활용

북한 나진항에 도착한 러시아 철도의 특별열차

북한 나진항에 도착한 러시아 철도의 특별열차

나진-하산 연결이 그것만의 개별 프로젝트가 아니라, 북 · 러관계 전반의 획기적인 개선과 연결돼 있다는 점은 금년 들어서 이미 확연해지고 있다. 3월부터 러시아 고위층이 빈번히 북한을 드나들더니 4월 28~30일에는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같은 기간인 4월 29일 러시아 의회는 옛 소련시기 북한의 채무 약 110억달러 중 90%에 해당하는 100억달러를 탕감해주는 협약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이것 역시 약 15년을 끈 지리한 협상이었는데 갑자기 타결됐다. 또한 6월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북 · 러 정부 간 경제회의를 통해 러시아 군함의 나진항 기항을 비롯해 러시아 기업과 자본이 북한의 제철 및 화력발전 등 기간산업 재가동과 지하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등의 다양한 협력사업이 체결되었다.

한 마디로 러시아 세력이 북한으로 남하하는 것이다. 특히 동해연선인 나진-청진-원산 선이야말로 한반도와 관련한 일본의 지정학적 성감대이다. 구한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일본은 원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연선에 자신과 적대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못 견뎌했다. 그렇게 될 경우 일본 전역이 적대세력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 때부터 북한의 행보를 보면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활용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북 · 일관계에 앞서서 반드시 북 · 러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해온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은 일본에 대한 속도 조절의 조종간을 쥐고자 자신들이 쥐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관계가 본격화할 경우 주도권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는 그때 가서의 문제이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그동안 중국에 편향돼 왔던 외교적 단선 노선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있다. 한마디로 복선 외교의 등장이다. 복선에는 복선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과연 그에 맞설 복전 전략이 있는가. 그게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남문희 /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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