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7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삽화가 출신 월북작가 정현웅 출판미술에 획을 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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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31 | 삽화가 출신 월북작가 정현웅 출판미술에 획을 긋다
 
 
, 정현웅, 1963년

<누구 키가 더 큰가>, 정현웅, 1963년

 낭만적인 감성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정현웅의 비판적 현실주의에서 혁명적 낙관성으로 변모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월북했던 화가들 중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미술가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일면이다.
 
 티없이 맑은 아이들의 순수한 일상이 동화책 한 컷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1963년에 만들어졌으니, 벌써 50년의 나이를 먹은 셈인데 낯설지 않은 현장감이 묻어 있다. 5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일상은 우리 어른들의 옛 이야기들을 회상하게 한다.
 
 언제나 회상은 낭만적이다. “내가 더 커야만 해!” 허리를 있는 힘껏 쭉 펴고, 긴장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두 사내아이의 진중함과 까치발을 하고선 ‘이번엔 누가 이길까?’ 흥미진진하게 심사를 하는 친구들. 혹시 두 사내아이 중 누군가가 발 뒷꿈치를 들어 반칙을 하는지 쪼그리고 앉아서 살펴보는 동생의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일상에도 자신들 나름의 경쟁이 있고, 규칙이 있고,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이기고 싶은 욕망이 얼굴 가득 표정에 드러나지만 흥미진진한 즐거움이 있다. “네가 졌어.” 하는 순간 엉덩이를 확 밀어 상대방을 불시에 고꾸라뜨릴 것 같은 트릭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은 없다.
 
 서로를 믿고 등을 기댄 한판 승부가 그래서 즐겁고 재밌다. ‘까르르’ 웃음이 맑게 퍼지고 있는 그림이다. 정현웅의 낭만적인 아이들 그림을 보면서 왜 자꾸 남과 북, 경쟁과 규칙, 신뢰 등의 단어들이 떠올려질까? 직업병일까? 그림을 그린 화가 정현웅이 월북작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혁명의 낙관적 미래를 화폭으로

, 정현웅, 1941년

<대합실>, 정현웅, 1941년

 정현웅은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지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결국 1929년 일본의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敎)로 미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간다. 당시 작은 가구상점을 운영하던 정현웅의 아버지는 자식의 미술 유학을 뒷바라지해 줄 만한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정현웅의 재능을 아낀 선생님들이 그의 작품을 사주며 응원해 준 덕분에 부푼 꿈을 갖고 일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현웅은 엄혹했던 시절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삽화를 그리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다. 삽화는 다른 미술장르에 비해 재료비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당시 인쇄기술의 발달로 출판물의 종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삽화가로 일하면서 일찌감치 삽화에 눈을 뜬 정현웅은 월북한 이후에도 1957년 조선미술가동맹 출판화분과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북한의 출판미술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품 ‘누가 키가 더 큰가’는 동화의 삽화와 같은 독특한 느낌을 전달받게 한다.
 
 물론 정현웅이 삽화만 그렸던 것은 아니다. 해방 전에 그가 1941년 그렸던 ‘대합실’을 보면, ‘누가 키가 더 큰가’와는 화면에서 전달되는 분위기가 다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대합실’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였던 작품으로 현재 작품의 소재를 알 수 없지만, 당시 흑백으로 출판된 도록에 그림이 실려 있어 우리에게 전달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고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덤덤히 담아내는 일상 속에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소녀는 어떤 꿈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일상의 무게에 고개를 떨군 아버지의 어깨 넘어, 팔을 괴고 관람자인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화면 속의 인물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현실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화가의 날카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에 비해 월북 이후 그린 ‘누가 키가 더 큰가’는 낭만적인 감성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대합실’을 보다가 ‘누가 키가 더 큰가’를 보면, 비판적 현실주의에서 혁명적 낙관성으로 변모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월북했던 화가들 중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미술가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일면이다. 현실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는 시선이 사라지고, 낙관적인 미래만을 바라보는 화폭은 낭만적으로만 다가온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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