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르포 | 도랑 하나의 국경선 ‘일보과’에서 본 북한은? 2014년 9월호
기획르포 | 접경에서 부르는 통일희망가! 1
도랑 하나의 국경선 ‘일보과’에서 본 북한은?
단둥 압록강은 강변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강변도로는 자동차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게끔 되어 있다. 단둥시 강변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북한 신의주를 바라다보면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단둥시 진흥구 홍리아파트 앞에서 출발한 승용차가 복잡한 압록강철교 관광지구를 벗어나자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변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강변도로를 달려 호산장성까지 도착했다. 단둥 시내에서 16㎞. 호산장성은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성을 축조한 것인데 이곳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웅장한 매표소 문을 지나자 입구에 거대한 조형물 아래 큰 글씨로 만리장성 기점임을 알리는 글을 새겨놓았다. 동행이 원래 호산장성은 나무울타리 같은 모습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우측에 성곽이 보이면서 정상에 회색빛 성채가 눈에 들어온다.
호산장성은 단둥에서 북한을 조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데 그 의미는 가장 근접해 북한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다. 호산장성의 등정은 잠시 뒤로 하고, ‘일보과’라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성곽을 우측으로 두고 가로지르니 숲길과 밤나무 등이 보이면서 작은 공터가 나왔다. 녹색 글씨의 돌판이 서 있었다. ‘일보과(一步跨)’. 글자 그대로 한걸음에 넘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랑 하나를 두고 중국과 북한이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북·중 국경 가운데 가장 근접한 지역이다. 그 도랑만한 물길은 넓이 뛰기를 하면 단번에 건널 정도의 폭이다. 중국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있는데 퍽이나 낡아 보인다.
북·중의 국경, 한 번 뛰면 넘을 수 있는 거리
철조망도 일부이고 호산장성 돌아가는 산모퉁이 쪽으로는 낮은 돌울타리 식으로 경계를 지어 놓았다. 한 곳은 샛길처럼 경계를 터놓아 사람이 드나들게끔 된 상태다. 그러고 보니 중국인 2명이 도랑에서 그물질하고 있는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과자라도 한 봉지 던지면 닿을 듯한 거리로 건너편이 북한 땅인데 옥수수밭이다.
옥수수밭 길로 런닝 차림의 자루를 멘 북한 군인 2명이 지나치고 있었고, 조금 건너편 밭 한 가운데선 망루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도랑에는 낡은 목선이 누운 채 버려져 있다. 아마도 이 물줄기를 오가던 배였을 것이다. 중국 측에도 초병 2명이 관광객들 틈에 서 있는데 느슨한 모습이다. 평화롭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전에 철조망이 없을 땐 얼마든지 이곳을 통해 북한주민들이 넘어 왔을 텐데 그 광경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전에는 철조망이 없었는데 탈북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철조망을 치게 된 것이란다. 중국 쪽에서 보면 그렇게 북한은 인접한 이웃임을 실감나게 확인시켜주는 현장이다.
발걸음을 호산장성 정상으로 옮긴다. 장성을 축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은 산뜻한 산성 재료에서도 드러난다. 마치 신축 건물 같은 분위기이다. 중국이 주장한 것처럼 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면 그 옛날 건축된 건물이나 성곽의 흔적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호산장성에서 역사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다. 정상에 이르니 탁트인 북한 의주를 앞에 둔 전망이 좋다. 성곽길을 따라 호산장성을 오르다보면 방금 전에 들렀던 일보과의 모습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너른 옥수수밭이 보이고 물줄기의 모습도 더욱 명료하게 이해된다.
호산장성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너편 산등성이에 육안으로 지붕만 보이는 누각이 있다. 의주 통군정이다. 통군정은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이 사신으로 청나라에 가려고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몇 날을 머물면서 기다리던 곳이다. 당시 압록강은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통군정과 호산장성의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되어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너편 정자에서 연암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을 말해 무엇할까.
호산장성에서 내려와 압록강 상류를 따라 자동차로 5분여 가면 조선 경내 관광이라는 푯말이 보이고 강 쪽에 여러 척의 선박과 보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을 만난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호산장성에서 내려다보았던 압록강까지 오가는 관광을 할 수 있다. 크루즈선 형태의 단체관광은 중국 돈 20~70위안 정도이고 작은 보트 전세는 3백위안이다.
전세를 내서 급하게 보트 뱃머리를 돌렸다. 압록강 물줄기를 보면 하류 지점인 일보과의 물줄기가 이곳으로 연결되어 압록강 본류와 만나게 되었고 두 물줄기 사이에 구리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도의 옥수수밭이 보이고 보트가 압록강 본줄기에 이르자 바로 지척의 강변에서 풀을 뜯는 소와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물살이 거세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보트를 모는 사공이 배를 북한 쪽 강변 가까이 접근시킨다.
두 명의 아이가 강변 모래톱에 서 있다. 남루한 차림이다. 선장이 준비한 담배와 용돈을 건네준다. 이곳에 배를 대는 삯인 듯하다. 아이들이 서 있는 언덕 위로 군인들이 보인다. 아마도 군인들이 아이들을 모래톱으로 내려보내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옆으로 낡은 선착장 시멘트벽이 보인다. 일본군이 압록강 기지로 사용하던 곳이란다. 강을 건널 수 있는 바지선도 보인다. 의주 쪽에서 구리도를 오가는 배인 것 같다.
“담배 있어? 먹을 거는? 배고파!”
의주 통군정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보트는 조금 더 나간 뒤 뱃머리를 돌리고 다시 북한 군인들이 둑에 앉아 있는 언저리에서 배를 잠시 멈춘다. “담배 있어?”, “먹을 거는? 배고파.”라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두 명의 무장한 군인들이 우리 쪽으로 향해 던진 말이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손짓으로 신호한다. ‘아차, 담배가 없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과자라도 좀 사가지고 탈 걸’ 못내 아쉽다. 군인들 아래로 염소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조선(북한) 경내 관광은 이렇게 코스를 마쳤다. 보트는 다시 빠르게 선착장을 향한다. 이런 방식으로 압록강을 진입해 북한 지역에 근접해서 배를 타고 관광할 수 있는 것은 중국과 북한 간의 협정 때문이다.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 공동으로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실제 북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구경하는 일이 가능하다. 분단된 상태가 아니라면 호산장성 아래 이 압록강변은 물놀이와 천렵을 하기에 얼마나 좋을 장소였을까. 옥수수도 늦여름 태양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단둥은 이런 모습의 장소다. 단둥의 지정학적 요소가 중요한 이유이고 그래서 아쉬움도 큰 장소이다.
신창섭 / 중국 〈CCTV〉 한국어방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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