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330척 왜군에 맞선 12척 조선 …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해전 2014년 9월호
영화리뷰 | <명량>
330척 왜군에 맞선 12척 조선 …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해전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글귀다. 자세히 음미해보면 그 결연한 의지에 다소 섬뜩함이 느껴지지만 이 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때는 서기 1597년 선조30년 9월 정유재란. 전선을 정비한 왜국이 서해안 연선을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꾸려 침공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이다. 영화 <명량>의 배경인 명량해전은 3대 해전인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가장 큰 해전인 한산도대첩은 “한산섬 달 밝은 밤의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 <한산도가>의 무대이며 그 유명한 학익진이 등장하는 해전이다. 그 다음의 노량대첩은 40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하고 추격하는 과정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는 마지막 해전이다.
올여름, 대한민국의 가슴을 뛰게 한 성웅 이순신
영화 <명량>을 보면서 그 많은 임진왜란의 전투 가운데 왜 ‘명량대첩’을 선택했는지 생각해 봤다. 스케일이 가장 큰 것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의 사망이라는 극적인 요소도 없는데 말이다. 도달한 결론은 12척의 배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수군의 절망적 상황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고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이 주는 긴장감을 최적의 요소때문에 선택한 듯싶다.
사실 이 영화의 김한민 감독은 전작 <최종병기 활>에서도 역사극을 통해 대박을 터트렸다. <최종병기 활>을 보면 김한민 감독은 고전적 소재와 배경으로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다. 시공을 초월해서 관객들에게 긴박한 시대적 분위기를 그대로 빙의시키는 재주로 인해 영화 <명량> 역시 개봉 이후 관객들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하고 있다.
현재 영화 <명량>은 예매율 1위를 지키면서 1,800만명까지 돌파할 기세다. 이대로라면 추석 연휴까지 전무후무한 2,000만 시대를 열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는 이 영화가 외국에서도 순조로운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북미지역에서 개봉하면서 첫 주 3일 만에 56만2천332달러(약 5억7천만원)의 판매수익을 올렸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개봉을 앞둔 상태다.
임진왜란이나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다만 드라마를 꼽자면 1986년 ‘명량해전’을 다뤘던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이 있고, 2004년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있다. 전작은 故김무생이 이순신 장군의 역을 맡았고, 2004년작은 김명민이 맡아서 열연을 펼쳤다.
故김무생은 지금 우리 호주머니에 있는 100원 동전에 양각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과 가장 닮은 배우다. 그리고 <불멸의 이순신>은 소설 <칼의 노래> 등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면모에 보다 주목하던 문학계의 영향을 받아 인간적 갈등이 부각되고 그것이 호소력을 보이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영화 <명량>은 개봉 전부터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당하면서 출발했다. 특히 그 초점은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에게로 몰렸다. 필자가 보기에 김명민이 구현한 이순신과 최민식이 구현한 이순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위기’에 있다. 즉, 김명민의 이순신은 왠지 사령부에 근무하는 엘리트 장군의 냄새가 난다면 최민식이 구현한 이순신은 최전방 야전에서 근무하는 야전군인의 터프함이 묻어있다. 그래서 두 배우가 구현한 이순신은 각기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순신의 여러 측면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가 가능했다.
일전에 언론학계에서 재미있는 논문이 발표됐다. 동북아 3국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지식의 출처에 관한 것인데 그 내용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국민들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역사적 사실의 70%이상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재미와 사료적 충실성이라는 두 가지를 항상 염두 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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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도 역사적 사실과 다른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물론 영화적 재미를 위한 첨삭에 의한 것이지만 영화 속 장면을 사실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순신 장군하면 떠오르는 거북선의 소실 시기다. 영화에서는 장수 배설이 명량해전 직전 소실시킨 것으로 그려지지만 명량대첩 당시 거북선은 건조되지 않았고 그 직전인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수군에 남아있는 거북선은 한 척도 없었다.
두 번째는 휘하 장수인 배설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배설은 명량대첩 직전에 이미 탈영을 했고 이후 권율 장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된다. 그밖에도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으나 소소한 부분이니 생략하겠다.
영화 <명량>의 방영을 앞두고 나타났던 전 국민적 관심을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 이순신 장군만큼 많이 회자되고 존경 받은 인물도 없었던 듯 싶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속된 말로 ‘폼’나지는 않지만 100원짜리 동전에도 있다.
영화 <명량>의 시대는 참으로 ‘빡센’ 세상이었다. 최소한 호래자식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성심껏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된다. 극중 노군(櫓軍)이 외치듯 말한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까 모르겄네. 모르면 호로쉐끼지~!”
12척의 배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수군의 절망적 상황과 ‘필사즉생 필생증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고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이 주는 긴장감을 최적의 요소때문에, 임진왜란의 많은 전투 가운데 ‘명량대첩’을 선택한 듯 싶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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