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10월 1일 0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남북 문화통합 가능성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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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남북 문화통합 가능성 보여줘
 
 
 모란봉악단 공연이 <조선중앙TV>에 방영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평양 장마당의 상인들은 철시를 하고 방송을 보기 위해 서둘러 귀가했다. 숏커트 헤어스타일, 어깨와 목이 드러난 반짝이 무대의상, 짧은 미니스커트와 과도하게 노출된 다리,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 금속성의 팔찌와 목걸이, 경쾌하고 선정적인 몸 동작… 열 한명의 연주자와 여섯명의 가수가 꾸미는 무대는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였다. 톰과 제리, 곰아저씨 뿌, 미키마우스, 미인과 야수(북한식 표현)의 주제곡 연주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오랜 기간 지켜온 ‘금기의 철폐’를 상징했다. 그리고 이 금기의 철폐는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의 등장으로 현실화 되었다.
 
 1960년대 말 정치무대에 나타난 김정일 위원장은 사망 때까지 40여 년간 부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의 리설주가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관람했다고 북한매체에 처음 소개되자 북한주민들은 ‘김정은–모란봉악단–리설주’로 이어지는 개혁과 변화의 화음을 기대하였다. 물방울 원피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 가죽핸드백 등은 평양예술대학을 비롯한 문화예술부문의 여대생들 사이에 리설주 따라하기 열풍을 일으켰다.
 
 모란봉악단에는 최근의 공연까지 총 19명의 단원이 등장한다. 단장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선우향희는 어린 시절부터 촉망 받던 수재로 평양 2·16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준수한 외모에 연주능력까지 겸비한 그녀는 모란봉악단뿐 아니라 북한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연예인이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이 구분되지 않는 북한이기 때문에 남한으로 치면 소녀시대 윤아와 성악가 조수미를 합친 만큼 인기가 있다고 할까? 그녀가 2013년 신년경축공연에서 선보인 치렁치렁한 금속성 목걸이와 큼직한 자주색 귀걸이 그리고 황금빛 브로치는 북한여성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간판스타 선우향희, 소녀시대·조수미 합친 인기

모란봉악단 선우향희

모란봉악단 선우향희

 가수 류진아는 “밤새워 노래를 불러도 힘든 줄 몰랐고 마이크 앞에서 쪽잠에 들어도 그 잠이 달았고 코피로 적셔도 보람이 있었다.”고 고된 훈련과정을 털어놓았다. 모란봉악단은 재능뿐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가수인 류진아와 라유미는 아직 2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차관급의 예우를 받는 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았다.
 
 모란봉악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집단이 아니다. 북한당국의 정치적 의도와 정책적 배려의 산물이긴 하지만 남북교류가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 남한 공연문화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1999년을 기점으로 남한 방송사의 방북공연이 러시를 이루었다. 1999년 의 ‘평화음악회’, 의 ‘제1회통일음악회’를 시작으로 모두 일곱 차례의 대중공연이 열렸다. 남한 가수들의 과감한 의상과 안무, 대본에 없는 즉석 발언, 화려한 조명과 폭죽, 대형 스크린의 폭발적인 영상 등 새로운 공연형식은 북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연을 연출한 제작자들에게는 더 큰 변화를 불러왔다. 원래 북한은 체육관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다. 잘 준비된 극장을 제쳐놓고 굳이 체육관에 무대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공연=극장’, ‘스포츠=체육관’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의 ‘정주영류경체육관개관기념공연’과 ‘조용필평양공연’이 정주영류경체육관에서 열리자 북한의 공연제작자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체육관 공연은 관객동원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관객과의 일체화, 다양한 연출을 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란봉악단의 주요 공연이 정주영류경체육관에서 열린 배경에는 남북문화교류의 역사가 담겨있다. 방송연출방식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방송에는 2000년대 초까지 ‘지미짚’이라는 장비가 없었다. 그런데 남한방송사들의 방북공연에 사용된 지미짚 카메라가 공연장면과 관객의 반응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남한 측에 장비를 요청했다. 이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는 어김없이 지미짚 카메라가 동원된다. 공연 도중 가수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거나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는 장면도 남한공연문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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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국경이 없는 언어
 
 모란봉악단의 출현은 단순히 북한 내부의 변화에 그칠 것 같지 않다. 모란봉악단은 남북한 문화교류의 가교뿐 아니라 남북한 문화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2011년 초 록(rock)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김정일 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수행원들과 싱가포르 실내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우리 언론들은 가난한 나라사정 생각하지 않고 비싼 공연구경을 다닌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음악은 국경 없는 언어이다. 에릭 클랩턴의 통기타연주가 한반도 북쪽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공유하는 정서의 공감대에 그의 가슴도 닿아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소프트 파워’로서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군사력과 경제력보다는 ‘문화적 매력’이 훨씬 강력한 파워가 된다는 것이다. 남한의 문화콘텐츠는 북한주민들에게 남한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고 남북한의 정서적 간극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이 공개적으로 남한문화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대규모 관중동원이 가능한 공연이나 텔레비전 중계를 전제로 한 이벤트는 북한주민들에게 남한문화의 콘텐츠를 수용하게 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모란봉악단과 그룹 엑소(EXO)의 합동공연, 남북한 주민들의 문화적 소통과 통합을 가져오는 매력적인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오기현 / 〈SBS〉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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