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신 타임머신! | 통일 향한 제도적 기반, 신연방주가 설치되다 2014년 10월호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 독일통일 타임머신! 6
통일 향한 제도적 기반, 신연방주가 설치되다
지난 1989년 11월에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에서 수십만명이 반복적으로 참가했던 시위에 검정, 빨강, 노랑색의 독일 전통 삼색기가 등장하였다. 많은 경우에 이 삼색기들은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었는데, 동독의 깃발에서 중앙에 있는 공산주의의 상징인 원형으로 된 보리이삭과 망치 그리고 컴퍼스를 잘라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통일을 향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초록색과 하얀색으로 된 몇몇 깃발도 눈에 띄었다. 초록색과 하얀색은 옛 작센 지역의 상징색으로서 시위대는 그것을 통해 작센의 정체성 또한 표현했던 것이다. 1952년에 동독이 전통적인 주를 없애고 그것을 자율성이 없는 행정단위인 행정관구로 대체하였지만 놀랍게도 스스로 ‘작센 사람 또는 튀링엔 사람, 폼메른 사람, 브란덴부르크 사람’이라는 지역 정체성과 감정까지 모두 없앨 수는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일 역사가 지닌 도드라진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역별로 나타나는 고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부터 독일은 지역 또는 도시 단위로 자율적인 통치형태를 유지해 왔다. 독일의 황제는 신성로마제국이 존속한 1806년까지 제국의 수장 역할을 하기는 하였지만, 작은 지역으로 나뉜 여러 제후국들과 자유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통치형태를 유지하였으며, 이러한 결과 17세기에는 300개가 넘는 영방국가들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자치 영방국가 간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서로 분쟁이나 다툼을 겪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두 번째의 통합이 이루어졌던 1871년 이후에 분쟁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각 지역들은 계속해서 강력한 입지를 유지하였다.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국가사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 지역들은 자율권을 상실한 행정단위로 격하되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서독과 동독에서 공히 연방주는 부활하였으나, 서독에서는 연방주들이 기반이 된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했던 반면 동독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52년에 연방주를 없애고 행정관구로 대체함으로써 다시금 완전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90년 7월 22일, 동독지역 5개 신연방주 설치
이후 1989년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연방주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존재하였다. 첫째, 시위 참가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 공산주의 정권이 차등을 두며 우선시했던 동독 수도 동 베를린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를 희망하였다. 동독 시절 내내 동 베를린을 우선시하는 데 대한 불평의 목소리가 있었으며, 이는 특히 열대과일 등과 같은 인기 수입품들의 지역별 차등공급이 그 원인이었다. 따라서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동 베를린 정권과 선을 긋겠다는 의미였다.
두 번째 이유는 크고 부유하며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서독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패한 동독이 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동독이 서독의 연방주의 모델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경우 예를 들어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이나 사회기반 시설의 확충 그리고 교육 등 정치적으로 여러 과제들이 부분 혹은 전적으로 주(州)의 권한에 속했기 때문에 동독 지역에서 주를 다시 만들지 않고서는 서독 모델을 기반으로 한 통일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분권을 통해서 옛 장점을 살리는 것이 가능하였다. 작센 지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업지역 중 한 곳으로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요람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예를 들면 현재 전 세계적 브랜드가 된 아우디가 1904년 ‘호르히’라는 상표를 달고 처음으로 탄생했던 곳이 바로 작센 주의 츠비카우라는 곳이다. 이 밖에도 프로이센의 전통을 계승한 브란덴부르크와 베를린은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통치의 마지막 시기인 1980년대에 이미 어느 정도 예전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방주를 부활시키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법률적 토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콘라드 아데나워를 비롯한 독일연방공화국의 건국 주역들은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의 독일 헌법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우선 통일을 달성하는 시점까지 유효한 한시적인 성격의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독일 헌법은 기본법 제146조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후 제헌 회의를 소집하여 새롭게 정하는 것으로 하였다. 프랑스와 분쟁 대상이었던 자를란트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기본법 제23조에 의거하여 단독으로 연방주 가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으며, 이에 따라 자를란트 주는 실제로 1957년 동 조항에 따라 서독의 연방주로 가입하였다. 결과적으로 서독의 기본법은 제정 40년 만에 가장 안정적이며 최상의 헌법임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서독 정치·경제모델 도입 위한 분권화 작업
헬무트 콜 총리 시절의 서독 정부는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년간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제헌 회의를 소집하는 것에 대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에서는 시민운동가들과 사회주의통일당의 협상모임인 ‘원탁회의’가 처음으로 서독의 기본법을 토대로 해서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였지만, 대부분의 동독주민들이 서독을 모델로 한 조건 없는 신속한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되었다. 제헌 회의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3의 방식(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절충)’을 찾는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기본법 제23조에 따르면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한 연방주들의 개별 가입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기본법의 수정 없이도 법적인 통일을 완결 짓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동독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되었던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선출되었던 인민의회가 1990년 7월 22일에 주 도입 법안을 의결하였으며, 이에 따라 동 베를린을 제외한 14개의 동독 행정관구들이 브란덴부르크 주, 멕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 주, 작센-안할트 주, 작센 주 및 튀링엔 주의 다섯 개 ‘신연방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동 베를린은 통일 기념일인 10월 3일에 서 베를린과 합쳐지면서 새로운 베를린 주가 되었다. 프로이센 시절에는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수도로 했던 브란덴부르크 주는 베를린 시와의 병합에 관해 1996년에 실시했던 주민 투표를 통해 반대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두 개의 주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990년 7월 구 동독 지역에 다시 생겨난 연방주들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선 행정 지원 분야에서 구 서독 연방주들과의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중요하면서도 폭넓은 행정교류가 가능해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원활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어려웠던 전환과정을 나타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상황과는 많이 대비되는 점이었다.
또한 연방주는 구 동독 지역과 구 서독 지역 간의 동등한 삶의 질을 창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였다. 연방주 간의 재정조정 제도나 신연방주들을 위한 연대협약(통일세)의 제도적 틀 내에서 세수의 조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주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주들을 지원하였다. 또한 구 동독 지역에서의 연방주 부활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지역 정체성 및 정신적인 뿌리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연방주 재정조정 통해 동서 간 경제력 차이 좁혀
예를 들어 드레스덴 시의 성모교회 재건과 같은 대규모 문화 프로젝트 등을 통해 시민들을 하나로 결속하였다. 과거 사회주의 시절 국가권력의 시녀라는 느낌을 가지고 생활했던 반면, 작센 주민과 드레스덴 시민이라는 자존감을 북돋울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 한 복판 프로이센 왕가의 정궁이 있었던 자리에 동독 정권은 ‘공화국 궁전’을 건설하였는데, 이를 허물고 옛 궁전을 복원하는 주제에 관한 논의와 같은 과정들을 통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지역 정체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신연방주 역사는 초기 단계에서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성공사례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치체제에 부합하는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 핵심적인 토대로 작용하였다. 독일 통일 및 지역마다 다른 지역적 특성들이 가지고 온 상호작용을 통일 이후 오늘날까지 독일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있는 근본적인 배경으로 들 수 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Bernhard Seliger) /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번역 : 김영수 /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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